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상자

나이를 먹는다고 그 만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by kaonic 2007. 4. 10.
세상을 내 멋대로 즐기며 자신에게 이로운 행동 만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하고 즐겁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면 이 세계는 쓰레기장보다 못한 곳이 되지 않을까.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으려는 그 순간. 옆으로 통통하게 살이 잘 오른 손 하나가 쓱 튀어나왔다. 하얀색의 무임승차권이 보이는 듯 싶더니 집표기 안으로 쏙 들어간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머리가 회전하려는 순간. 내 몸은 밀쳐지고 있었다.

옆으로 밀린 후, 뒤로 잡아당겨진 것이다. 뽀글뽀글 잘 볶아진 검은 머리를 한 그리 늙어보이지도 않는 통통하게 혹은 심술궂게 살이 오른 할머니가 되어가는 아주머니의 형상이 스쳐간다.

할머니도 아주머니도 아닌 그녀는 짜릿하게 눈을 한 번 찌푸려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에 따끔함을 던진다. 얼어붙어버린 내 뒤로 까맣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빨리 나가라고 밀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순간 정신을 차려 교통카드를 대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계단으로 다가가는 도중, 할머니도 아주머니도 아닌 그 분께서 어께를 활짝 펴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위풍도 당당하게 장애인용 앨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버튼을 누르는 것이 보인다.

출근하던 중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로 나오는 짧은 순간의 황망함.

입도 뻥긋 못하고 잠시 얼어 붙어 있을 수 밖에 없던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언젠가 보았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62세 할머니가 지하철 무료 탑승을 위해 경로우대권을 요구한다. 아무래도 65세로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바라보고 역무원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할머니는 신분증 제시를 거부한 채, 몇살인지 모르냐며 역무원을 밀치고 다리를 걷어찬다. 열받은 역무원은 할머니의 팔을 잡아채고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둘다 쌍방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

나이를 먹는 것은 세상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삶을 경험하고,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며, 그렇게 쌓인 연륜은 경로사상을 만들어낸다. 세월은 보다 풍부한 경험과 함께 젊은이는 모르는 지혜를 지니게 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와 함께 육신은 닳고 닳아 노쇠해지며 거동이 불편해 진다. 경제력은 점차 줄어들고, 주변에서 하나하나 사라지는 지인들을 안타까워하며 외로워진다. 그 피할 수 없는 늙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경로우대권이 나오고 경로우대석이 나오는 것이며, 노약자/장애인용 시설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한 바탕에는 노인에 대한 측은 함 보다는 노년의 삶의 경험과 지혜로움을 공경하는 마음이 깔려있다. 이와 함께 자신이 공경 받으려면 그럴만한 생각과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모두가 경로우대를 해준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자기 멋대로 즐기며 자신에게 좋기만한 행동을 하면서 우대를 바라고, 젊은이에 대해 삐뚫어진 잣대를 가지고 비난하고 싫은 감정을 가진 사람은 그 자신처럼 제멋대로 사는 젊은이에게 걸려 호되게 당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이는 똥꾸녕으로 먹는게 아니란 말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숙하고 올바른 정신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과 행동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