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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고객을 외면하는 애플의 짜증나는 AS 정책

by kaonic 2007. 11. 2.
모든 것이라고 해도, 스스로 겪은 일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규정에만 목을 메달고 조금의 여유도 없는 애플의 AS 방침이 너무나 어이가 없다. 애플의 서비스가 엉망이라는 소문은 무척이나 광범위해서 지레 겁을 먹을 정도로 수많은 구설수를 낳고 있다. 그리고 그 것을 직접 체험하고 보니 애플은 고객을 유치한 후에는 입 싹 씻고 쉽게 내다 버리는 곳 이란 사실을 뼈져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부터 내린 지름신에 견디다 못해 결국 구입한 아이팟 나노 3세대는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구하기 위해 일본에서 구매대행하는 업체를 이용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정가보다 4만원 가량 낮은 가격으로 아이팟 나노 3세대 8기가(New iPod Nano 8G)제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렇게 구입하면서 AS걱정을 안 한 이유는 세계 어느곳에서 구입해도 동일한 AS를 받을 수 있다는 애플의 월드 워런티 덕분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으니, 구입 후 "10일 이내에 발생한 제품의 이상증상에 대해선 무조건 새 제품과 교환"해준다는 방침이 있으나, 구입한 대리점에서만 교환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매대행업체에 따져서 교환하려면 배송비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 버리니 어쩔 수 없이 국내에서 그냥 AS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이상증상이란 무엇인가? USB 2.0을 지원하는 단자에 연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USB 1.1장치에 USB 2.0을 꽂았으니 USB2.0을 지원하는 단자에 iPod을 연결하라는 메시지가 뜨고, USB 1.1의 느린 속도로 동기화가 된다. 케이블을 좀 구부려서 만져주고 살포시 내려놓고 안 건드리면 USB 2.0으로 정상 작동하기도 하고, 케이블을 조금만 건드려도 연결이 끊어지고 추출 되어 버리는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여러번의 실패끝에 선을 잘 꼬아서 정상적으로 연결된 경우에 정말 조심해서 케이블을 건드리지 않고 동기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연결이 제대로 된 경우엔 아무런 이상없이 제대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 했으며, 이 과정에서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비롯해 8~9번의 복원과 20번 정도의 동기화를 거쳤다.

위와 같은 이상증상은 한 컴퓨터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혹시나 해서 사무실에 있는 모든 컴퓨터에 아이튠즈를 설치하고 전부 접속해 봤으나 동일한 증상을 가져왔다. 이쯤이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문제는 분명 케이블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주변에 아이팟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케이블을 연결해 볼 수 없었다.

결국 애플 기술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았다. 상담원에게서도 케이블에 이상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는 답을 듣고, AS센타에 가져가서 다른 케이블을 연결해서 테스트 해보고 교환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애플의 악명높은 AS가 실감되지 않을 정도로 순조로웠으며 상담원이 매우 친절해서 호감도가 상승했을 정도다.

출근길에 충무로에 위치한 케이퍼라는 애플 AS 대행업체를 찾아갔다. AS접수를 하고, 이상증상을 설명하니 프론트 데스크의 여직원이 케이블과 iPod를 받아들고 컴퓨터에 연결했으나 내가 겪은 동일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걸 가리키며 이런 증상이라고 했더니, 이 컴퓨터는 USB 2.0을 지원하지 않아서 USB 2.0을 지원하는 장치를 연결하는 모든 경우에 이런 메시지가 뜬다고 한다. 설명은 대체 뭘로 들은건가?

답답함을 누르고 USB 2.0을 지원하는 컴퓨터에 꽂아보라고 말했더니, 이곳에는 USB 2.0을 지원하는 컴퓨터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주변에 널린 컴퓨터 중에 USB 2.0을 지원하는 것이 없을 수가 있느냐 찾아보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진행 중 머리를 짧게 깍은 직원이 지나가며 기분나쁘게 한 마디 던졌다. "일단 그냥 맡겨놓으라 그래." 였으니, 앞에 서있는 사람 무시하는 기운이 스멀스멀 풍겨나왔다.

이후 여직원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래서 테스트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라고 했으나 묵묵부답. 어쩌냐고 물으니 겨우 돌아온 대답이 "아까 못 들으셨어요? 맡기라잖아요."란다. 결국 기분만 더렵혀진 채 AS센터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어떻게 AS센터라고 칭하는 곳에서 기본적인 케이블의 연결 테스트조차 할 수 없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애플 기술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앞뒤 설명을 모두 했으나 상담원으로써 권한 밖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이런 경우에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바꿔달라고 했으나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권한 밖의 일이었다. AS센터에 연락을 해 놓을 테니, 케이블 테스트를 해 보고 확실하면 교환 받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AS센터는 대행업체이며 애플 본사에서 내놓은 정책에 준수해야 하기에 자신들도 간섭할 권한이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친절하게 전화받고 기분좋게 응대하는 것은 좋지만, 결국 책임회피일 뿐이다.
 
2분도 안 걸릴 테스트를 위해 이리저리 휘둘리고 전화통 붙들고 늘어진 것을 생각하니 시간 참 많구나 싶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통채로 맡겨 기스가 나는 것을 감당하거나 AS를 포기하고 케이블을 새로 구입하는 것이 속편할 것 같다. 그럼에도 재생제품으로 교환해준다는 이야기에 통채로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구입한지 일주일도 안 된 새 것을 중고 부품이 들어간 리퍼블리쉬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는 건 매우 기분 나쁜 일이다. 일단 3000원짜리 케이블이라도 구입해서 사용해 봐야 겠다는 답을 내렸다.

대행업체를 통한 규정에 얽메인 AS는 어떤 경우엔 매우 편리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잘한 경우엔 오히려 더 큰 불편함과 함께 시간낭비만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규정을 세세하게 하나하나 상황별로 만들어놓을 순 없을테니 답답하기만 하다. 과연 애플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AS를 받았어도 이렇게 빙빙 돌려지기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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