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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워터멜론 - 큰 가슴이란 무엇인가?

by kaonic 2007. 6. 19.
제목을 넣고보니 미끼를 달아둔 기분이다. 제목 먼저 쓰고 글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인데, 가끔 이렇게 제목을 달아두면 제목의 영향으로 편중된 성향을 보이곤 한다. 게다가 두서가 없이 중구난방으로 흐트러지기까지...... 이에 절망하지 않고 최대한 제목의 영향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펼쳐보이고자 한다. 워터멜론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영화인데, 얼마전 OCN에서 방영한 바 있다. OCN은 재방송의 천국이니 지속적으로 재방영될 것이 분명하다. 케이블이 달려있다면 언제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적극 추천하니 재밋게 감상하면 좋겠다. (단, 미성년자 관람불가)

유난히 큰 가슴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묘하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의 어리숙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취향대로 가슴이 큰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가슴이 큰 여자가 좋으냐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가슴이 작은 여자가 좋다고 거짓말을 한다. 가슴에 대한 것 만이 그의 유일한 거짓말이다. 이로써 갈등이 시작된다. 여자는 자신의 큰 가슴을 불만스럽게 즉,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여자는 자신을 만나기 전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남자는 과거의 하룻밤 정사를 말한다. 비오는 날 집 근처 길을 걷다가 길가에 쪼그려 앉은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 우연히 집안에 들이고 한 번의 정사를 가진다. 여자는 과거의 여자가 가슴이 큰지 작은지 묻지만, 남자는 가슴은 안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바로 떠나버렸다는 거짓말과 같은 이야기에 여자는 속으로 코웃음을 친다. 그렇게 그가 말하는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는 언제나 여자에게 거짓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느날, 여자는 남자에게 가슴이 큰 여자 얼마 후 여자는 자신의 안그래도 큰 자신의 가슴이 조금 더 커진 느낌을 가진다. 그리고 작은 가슴을 좋아한다는 남자의 말이 생각나 가슴에 대해 더욱 신경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묘하게 그녀가 그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무심한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로 받아들여지든 거짓으로 받아들여지든 신경쓰지 않는다. 여행사에 다니던 남자가 어느날 집에 돌아오면서 직장을 그만뒀다고 태평하게 말한다. 이유인 즉, 여행사의 영업이 잘 되지 않아서 아쿠자를 영입하고, 야쿠자와 협력해서 운영하려하는 와중 상사로 들어온 야쿠자가 자신을 야쿠자에 입문시키려 해서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여자는 당연히 그냥 그만두고 뻘쭘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벌기위해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 다시 취직한다. 남자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취업을 위한 면접과 서류에 대한 이야기가 둘의 대화에서 흘러나오지만, 보이는 것은 그가 그저 집에서 빈둥대고 있을 뿐인 영상이다. 게다가 어느 틈인지 새로운 핸드폰까지 손에 들려있다. 빈둥대다 받은 전화속에서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음날, 남자는 면접이 있다고 집을 나선다. 때마침 울리는 새로운 핸드폰,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그에 따라 남자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결국 남자를 미행한다. 이곳 저곳을 누비던 남자는 어느 모텔로 들어간다. 그리고 돌아온 남자는 얼굴에 멍이 들어 있다. 남자는 전화기를 주웠는데, 주인이 전화를 해서 어느 장소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 말한다. 대신 고마우니 취직자리를 소개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따라간 남자는 어느 모텔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고, 낯선 폭력배를 만나 협박당하고, 두드려 맞고, 기절했다 깨어보니 지갑이 없어져서 그냥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이제 여자는 진실되어보이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거짓만을 말하는 남자를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혼란스런 마음으로 직장 상사와 관계를 맺게 된다. 말 그대로 불륜이지만 뭔가 다르다. 이들 사이에서 흐르는 것이 없다. 각자의 사랑이 식은 흔적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상사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남자가 거짓말만 한다고 말한다. 직장상사는 남자가 나쁜 사람이냐고 묻지만, 여자는 남자가 좋은 사람이고 진실된 사람이지만, 거짓말만 한다고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현관에 끼어있는 낯선 여자가 올라탄 벌거벗은 남자의 사진을 본다. 결국 짐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단절된 소통은 극단을 치닫게 되었다. 남자의 행동은 대부분 보여지지 않는다. 남자의 말에 따라 이미지가 흐르지만, 객관적 견지에서 남자가 상황에 처해있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로써 관객조차 남자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진실을 말하지만, 진실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진실이 거짓으로 가공되고, 재포장된다. 결국 소통의 단절이 찾아온다. 결말은 우여곡절을 겪고 황당무게한 화해무드로 순식간에 소통이 이루어지며 끝나긴 하지만, 어쨌든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그럴듯 하다. 결국 가슴이 크고 작은 건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