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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PiFan -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그리고 "에볼라 신드롬"

by kaonic 2007. 7. 16.
지난 14일 토요일, 아침 일찍 부터 부천으로 가기위해 부산을 떨었다. 원래 보려던 영화는 "유령 대 우주인" 그러나, 시간 계산을 잘못 한 관계로 1시 45분 발 순환 셔틀을 타버리고 말았다. 상영관에는 2시 5분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버스가 출발 한 이후에 알았다. 결국 지각. 그냥 택시를 탔으면 되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셔틀을 탄 이상 내려서 다시 택시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보니 아무 소용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영관 앞에 도착해서 티켓을 발권하는 곳으로 갔다. 통 사정도 소용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절대로 봐주는 일이 없다나. 어쨌든 그랬다. 지각은 있을 수 없는 일인가. 영화제에서 지각하는 것은 해당 영화를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는 일인가보다. 어디선가는 상영시간에서 10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다 입장 못하고, 지연 상영을 했었다는 곳도 있었다는데, 신은 언제나 그렇듯 안 좋은 상황에서 내 편이 아니다.

맑고 곧게 내리쬐는 태양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만이 위안이 되어줄 뿐.

부천까지 헛걸음을 한 것이 아닐까 싶어 내심 초조해졌다. 결국 다른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녀의 바램은 "불고기"였지만, 팬클럽의 압도적인 선점으로 인해 표를 구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결국 오후5시에 상영하는 영화들 중 차선책을 찾아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좀 괜찮겠다 싶은 영화는 "팔선반점의 인육만두(1992)"로 명성 혹은 악명이 좔좔 흐르던 허먼 여우 감독의 "에볼라 신드롬(1996)"이었다. 같이간 그녀는 호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매우 갈등했으나 설득에 넘어왔다(기보다 내 마음을 헤아려 준 듯 ㅎㅎ). 어쨌든 "에볼라 신드롬"은 그다지 인기작이 아니였기에 쉽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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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란 무엇인가. 제목에서 느껴지는 식인행위를 통해 내용조차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죽여 만두를 만든 한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연쇄 살인행각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영화로써 컬트/고어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거의 전설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가 발표된 1992년 당시 폭발적인 반응으로 홍콩영화계에 과격한 표현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비록 잠시동안이지만 홍콩영화의 고어물시대를 열었을 정도다. 주인공은 "무간도"에서 황국장을 연기한 황추생으로 이 영화를 통해 홍콩금장상 남우주연상을 획득함으로써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는 매우 많은 논란을 만들어 냈다. 사람을 죽이고 다듬어서 만두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먹인다는 행위는 많은 영화에서 보여진 소재였으며 역사속에서 쉽게 인육을 먹은 기록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이 문제시되는 것은 "어린 아이들은 피해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피해현장을 세밀히 묘시하지 않는다."라는 영화속에서 금기로써 취급되는 윤리적기반을 완전히 깨트려 버렸다는데 있다.

어른과 아이의 구분 없이 이뤄지는 살인과 해체 행위는 수 많은 논란을 낳았으며 아직까지도 뜨거운 감자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메시지는 없고 행위의 묘사 그 자체만 남아있다.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 누구도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잔혹한 현실은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침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진행 속에서 어설픈 유머가 곁들어진다. 영화 속에서 찾을 교훈이나 철학은 별로 없지만, 잔혹한 장면을 견뎌낼 수 있다면 알 수 없는 후련함을 남겨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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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에볼라 신드롬"에 대한 소개로 돌아왔다. 허구헌날 삼천포로 빠져버리니 곤란하다. 쓸데없이 내용이 길어지니 손가락이 고생한다. 어쨌든, 돌아왔다. 허먼 여우 감독은 "팔선반점의 인육만두"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황추생을 다시 주인공으로 삼아 "에볼라 신드롬"이 탄생시켰다. 전작이 단순한 살육과 말초신경의 자극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에볼라 신드롬"에서는 살육은 기본이고, 여기에 더해 1996년 당시에 유행했던 사스(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대한 공포를 에볼라 바이러스로 대치한 전염병에 의한 재난과 함께 범죄영화로써의 면모까지 포함해 사회적인 의문을 던지는 철학적 요소까지, 거의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운 작품이다.

매우 과격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영화가 진행되는데, 주인공 카이를 연기한 황추생의 연기가 매우 볼만하다. 제대로 아무 생각없이 불만을 가득담은 그의 광기에 찬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형수와 바람을 피우다 들킨 카이는 광기에 빠져 형님과 그의 수하를 한꺼번에 죽여버리고, 형수마저 처참하게 살해한다. 유일한 목격자는 형님내외의 어린 딸. 목격자인 어린아이를 죽이려는 카이 앞에 누군가 나타나 그대로 도망치고 만다. 경찰을 피해 남아프리카로 간 카이는 중국식당에서 일을 하지만, 주인은 카이가 도망자 신세임을 알고는 적은 임금으로 착취를 한다. 싼 값에 돼지고기를 구하려는 식당주인을 따라 아프리카의 한 부족을 찾아간 그들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카이는 갑자기 쓰러진 흑인 여자를 강간하고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사경을 헤메는 그를 식당주인의 부인은 죽이고 내다버리자고 한다. 비몽사몽간에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깨어난 카이는 식당 주인을 죽이고 부인도 강간한 후 죽여버리고 만다. 카이는 천만분의 일 확률로 에볼라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겨 숙주가 된 것이다.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한 카이는 결국 시체를 다져서 햄버거를 만들어 판매하기로 한다. 인육 햄버거의 탄생이다. 여기서 카이의 명대사 한 마디 "죽어서도 일을 시키는 개새끼들!"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린 카이가 만든 인육 햄버거는 불티나게 팔리고, 이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다. 카이는 주인이 모아두었던 돈을 찾아내 홍콩으로 돌아오고, 홍콩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온갖 장르가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로써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카이의 내면세계를 거침없이 일관된 행위의 흐름으로 잘 묘사하고 있어 섬뜩함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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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프로그래머 권용민, 감독 허먼 여우, 통역 김네모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선택한 영화는 그렇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박수를 쳤으며, 예상치 못한 감독과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었다. 긴 머리를 치렁치렁 흔들며 매우 만족스런 표정으로 앞에 앉은 허먼 여우 감독은 그야말로 여유 그 자체. 대답하기 복잡한 홍콩 반환과 관련된 정치적인 질문도 교묘하고 부드럽게 흘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모든 행위와 사회적 규제는 정치적이라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