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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세븐데이즈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by kaonic 2008.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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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들을 통해 연극적인 시공간을 영화로써 절묘하게 풀어냈던 원신연 감독의 두번째 작품 세븐데이즈는 무어라 표현할지 참 애매하기만하다. 세간에선 국내 스릴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바라보기엔 잘 짜여진 한 편의 오마주 덩어리라고 해야 할까? 무의식적인 복제품의 조각모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세븐데이즈는 그 아슬한 경계선 어디쯤엔 가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하다.
 
매우 공들여 제작한 강렬한 느낌의 오프닝 비쥬얼부터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오프닝이 연상되는 건 어찌하란 말이냐. 제목부터가 세븐데이즈가 아니던가, 시작부터 노골적이다 못해 당당하기까지 하다. 전작에서 보여준 자신만의 독특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초반에 공을 들인 짧은 장면 위주의 빠른 편집과 장면 효과들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상이 바로 대입되어 겹쳐지 듯 그 기법을 빼다 박아놓았으니, 이쯤 되면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다른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잘 짜여진 구성은 잠시라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쳐 대며 스토리를 진행시켜나간다. 그야말로 정신없다. 눈앞에 펼쳐진 온갖 익숙한 표현과 기법들 속에서 내내 떠오르는 다른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이야기의 흐름까지 쫓아가려니 혼백이 이탈할 지경이다.

극단적으로 헐리웃의 스타일을 지향하다보니, 영상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요소들에 있어 국가적 배경 자체가 모호해져버렸다. 일례로 판사가 최종 결정권을 지니고 있는 한국의 법정에서 변호사 유지연(김윤진)이 변론하는 대상이 너무나 모호하다. 판사를 바라보지도 않고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변론을 한다. 배심원 조차 없는 법정에서 판사는 장식품의 역할조차 못하고 있어 괴리감이 느껴질 밖에.

헐리웃 영화나 드라마에서 따온 장면으로 추정되는 장면을 살펴보자면, 주인공이 납치범의 협박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전화선을 타고 미시적 세계를 관찰하는 장면은 "파이트 클럽"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로커 강지원이 정신병원에서 변호사에게 쪽지를 건네는 장면은 드라마 "엑스파일"에 나왔던 장면과 너무나 흡사하다. 또한, 변호사 유지연의 납치되었던 딸을 발견하는 '너른 들판에 저 멀리 송전탑이 보이는 장면'은 "세븐"에서 주인공 데이빗 밀스 형사(브래드 피트)가 범인과 만나 아내의 시신을 보는 장면의 구도나 색감조차 비슷하게 재현해 놓았다고 생각된다. 이 외에도 수많은 명장면(?)들이 숨어있으니 조금만 주의해 보면 하나하나 발견해내는 쏠쏠한 재미가 느껴질 정도다. 그러고보니 억지로 따져들기 시작하면, 요일 표시도 세븐에서 가져왔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

결국,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병석(최민수)이 평생동안 고쳐 쓴 완벽한 구조의 세련되고 치밀한 대사로 이루어진 작품이 영화사의 만장일치와 세인의 주목 속에 제작되었지만, 사실 온갖 헐리웃 영화들의 잘 짜여진 조합이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세븐데이즈"의 경우엔 스토리에 있어서 그런 면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울지 모르만, 영상과 편집에 있어서는 충분히 떠올릴 만 하다. 이는 과연 원신연 감독이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갑작스레 연출을 맡은 작품이라 그의 무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반영된 것일까?
 
아무튼,

그럼에도 빠르고 긴박한 전개를 잘 조합해 한 순간도 힘을 빼지 못하게 만드는 흡입력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세련되고 돋보인다. 특히, 김성열 형사를 연기한 '박희순'의 호연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비교적 단순하고 어찌보면 이미 많이 사용되었던 소재의 이야기 속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스토리에 끌려갈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고, 연출과 편집에 있어서 그 긴박감의 강약이 적절히 배분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한, 반전시대(?)의 영화에 걸맞는 절묘한 반전까지 준비되어 있어 그 즐거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