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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 - 불쌍하다 김명민

by kaonic 2009. 9. 28.

김명민, 그가 무리하게 살을 빼가며 연기에 혼신을 다했기에 불쌍하다는 것은 아니다. 연기자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열정으로 해낸 일이였기에 불쌍하기보다는 대단해 보여야 옳다. 정작 감동 휴먼 스토리여야 할 "내 사랑 내 곁에"의 주인공 종우는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그가 삶을 견디며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에 공감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공감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불쌍하지 않았던 것이다. 포스터만 바라봐도 익히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다. 단지 죽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안에 어떤 드라마도 목표도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본 배경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오직 하나의 목소리로 이래도 감동받지 않을래? 라고 묻는듯 하다.

이런 말은 조금 미안하지만, 30분을 넘어서면서부터 온몸이 배배 꼬이면서 주인공이 빨리 죽고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스포일러 거리도 되지 않는 줄거리를 살펴보면, 주인공 종우(김명민)는 루게릭 환자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돌봐주던 어머니도 죽어버렸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우연히 고향에서 함께 자란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를 만나게 된다. 종우는 뭔 생각이었는지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불구하고 지수에게 사귀자고 도전하고, 대체 또 뭔 생각인지 지수는 쉽게 응낙하고 종우의 병이 악화되어 죽을 때까지 그를 돌봐주며 함께 한다. 헌신적인 지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 그자체다. 만남과 흐름 그리고 이상향은 저 멀리 제쳐두고라도 어디선가 비슷한 투병기를 본 것 같지 않은가? 잠시 생각해보자.

그렇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이미 다큐멘터리를 통해 익히 봐왔으며, 그들의 고통과 사랑, 그것에 공감하고 감동받으며 함께 눈물을 흘려왔다. "내 사랑 내 곁에"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성과 드라마다. 환상으로 중무장한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의 이야기. 꺼져가는 삶 속에서 생을 최대한 지속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는 있지만, 그것에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실질적 목표의식이 존재 하지 않는다. 루게릭 병에 대해 알려주는 질병관련 계몽영화같다.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정리하고 감정적 경험을 겪도록 해주는 것이 멜로영화의 역할이다. 그래서 감정의 흐름을 만들고 해소의 출구를 열어주는 것이다. "내 사랑 내곁에"에는 이런 요소들이 매우 빈약하다. 종우의 루게릭 투병 이전의 삶은 그저 약간 내비쳐서 고시공부를 했었구나 싶은 막연한 느낌 뿐이며, 두 번의 이혼을 한 지수의 삶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속에 이야기를 지탱하며 공감을 이끌어낼 버팀목이 매우 빈약했다.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던 김명민의 혼신을 바친 연기도 이런 흐름 안에서라면 앞뒤 없이 몸부림치는 지경에 이르를 뿐이다. 그래서 김명민이 불쌍하다. 조연들의 연기도 좋았고 그들의 표정도 좋았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정말 환자를 돌보는 사람 같았고, 의사는 정말 의사 같았다. 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바라보니 더욱 현실감 넘치는 연기였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가 연기에 혼신을 다한 영화 속에서 억지와 빈곤함을 발견하는 건 무척 우울한 일이다.

박진표 감독님 왜그러셨어요?

그런데, 남녀가 같은 병실에 있는게 말이 되나? 서로 불편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