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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SF장르영화의 모호성에 대한 짧은 생각

by kaonic 2011. 2. 27.


SF장르영화가 B급을 탈피하는 계기가 되어준 <스타워즈>(1977)를 시작으로 최근의 <인셉션>(2010)에 이르기까지 SF장르는 현대 할리우드 영화의 지배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SF팬덤 세계에서는 SF라 칭하는 대부분의 작품이 비주류에 속한다. 이 경우 SF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가 매우 중요한 관점의 차이를 만들어내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이들에게 있어 <지구를 지켜라>(2003)SF영화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SF 소재를 차용한 액션영화에 불과하다. 차이는 간명하다. 전자는 과학적 사고를 변용함으로서 인간과 과학의 철학적 사고 작용을 고려(어느 정도는 허황되지만)했다면, 후자는 과학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공상적 사고를 바탕으로 액션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모든 SF영화가 테크놀로지를 최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어떠한 단계에서든 과학적 상상력을 지닌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동기화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는 문학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관점인데, 19세기에 들어와 과학소설은 다양한 장르적 실험 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함께 급속히 발달된 과학에 대한 공포가 맞물려, 통속 잡지와 연재만화를 통해 표출되던 문화적 흐름은 SF의 장르적 모호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부극이나 갱스터 영화에서 보이는 일관된 도상의 적용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 SF장르의 경계는 이례적으로 흐릿한 점이 많다. 이는 장르의 정의와 분석에 있어 커다란 어려움으로 작용해 왔다. 그럼에도 SF장르영화에는 SF작가인 피터 와츠(Peter Watts)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소설이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다른 종류의 소설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브라이언 올디스(Brian Wilson Aldiss)“SF란 진보하고 있지만 아직 혼란스러운 우리 지식으로, 우주 안에서 인간에 대한 정의(definition)와 그 위상(status)을 연구하는 작업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SF장르영화에서 그러한 경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SF로써 다루어지는 과학적 측면이 장르의 중심에 자리 잡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SF장르의 범위에 대한 논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SF장르가 이러한 논쟁 속에서도 분명한 하나의 장르로써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SF의 정의가 불분명할 정도로 장르적 변용이 다양하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집단적 범위가 비교적 유연하게 적응되어 왔기 때문이다. 파멜라 아나스(Pamela Annas)미국은 SF영화에 관한 정치적으로 좌파이며, 페미니즘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하며, 그것을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 1980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은 비교적 유효한 셈이다.

이처럼 SF장르영화는 SF장르소설에 비해 그 정의가 미약한 편이다. 익숙한 구조와 전형적인 인물상, 친숙한 도상들은 장르영화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영화 산업의 안정에 도움을 주었지만, 다양한 장르적 혼합이 일반적인 SF장르에 있어, 어떤 패턴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SF의 하위 장르로써 구분되는 SF액션, SF호러, SF스릴러 등 다양한 혼합장르가 존재하나 이는 SF장르영화로써 분석되기보다 각각의 혼합된 액션, 호러, 스릴러 등으로 분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이를 통해 SF장르영화로써의 관습성을 찾아낸 다는 것은 단순히 설정상의 과학적 요소가 타당하게 작용되는 것인가 아닌가를 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SF액션은 SF소재를 차용한 액션 장르로써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며, SF호러, SF스릴러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SF와는 거리가 먼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인 <트루먼쇼>(1998), <바닐라 스카이>(2001), <이터널 선샤인>(2004) 등에서 SF 장치들이 서사적 전제로 도입됨으로써 장르의 재조합을 통해 SF가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SF의 모호한 장르적 혼합 속에도 SF장르영화가 지닌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 문명, 인간과 비인간(외계인, 괴물, 안드로이드 혹은 사이보그 등), 과거와 미래 등의 대립구조를 통한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구조는 여타 장르의 대립항과 비교해 SF장르영화만의 특징이라 보기엔 어렵다. 또한 대부분의 강력한 장르적 혼합물은 과학이 지닌 사회-정치적 의미에 대한 탐구는 없이 특수효과가 만들어내는 볼거리에 더 의존적이다. 때문에 이들 혼합 장르의 연구에 있어 SF가 지닌 다양한 방향성 보다는 비주얼에 집중함으로써 SF장르영화가 과학적 사고로써 비춰보는 현 사회에 대한 사회, 인문, 정신, 기호학적인 분석이 드문 편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수의 진지한 SF장르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통제 여부, 혹은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과학을 통한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거나 여전히 구속된, 현실의 변화 속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존재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심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현대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써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게 된 SF장르영화가 지닌 흥행성과 관객의 몰입을 생각해볼 때[각주:1], 다양한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SF의 변화는 시각 효과 산업의 급증과 함께 발전해온 것이지만 그 변화가 미래의 비전과 현재의 변형을 전달하는 측면에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스타워즈>(1977)를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단계를 나누는 지표라고 삼는다면 그 이전 SF장르영화에 대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950년대는 냉전 알레고리가 지배했던 대로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장르의 불분명한 시작을 알리면서 선정적인 통속 서사와 함께 행성 충돌과 원자 폭탄, 돌연변이가 등장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는 그 디스토피아적 시각이 더 두드러진다.

1940년대 이전의 SF장르영화는 주로 호러, 선정적인 통속 서사, 원자 폭탄, 돌연변이, 외계인(마치 괴물과도 같은), 마인드컨트롤 등을 다룸으로써, 장르적 영역을 확고히 다지고 있던 SF소설의 문화 현상적 정의에 속하지 않은, 구체적이지 못한 호러영화의 고딕적 특성을 내제하고 있었다. ,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이라기보다 새롭고 신기한 현상들이나 이론, 대표적으로 연금술이나 외계에 대한 근원적 공포 같은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미국의 SF장르영화에는 미친 과학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언제나 반사회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호러분위기의 암울한 섬이나 외딴 저택처럼 고립된 명백하게 고딕적인 장소에서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과학자=연금술사(혹은 마법사)라는 공식이 그려진다. 이와 같이 1930년대 이전 미국 SF장르영화의 특징은 과학에 대체로 무관심한 고딕 호러에 기반을 둔 정서가 가득했다. 이 시기는 호러 영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어도 아직까지 SF 영화로서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1931)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신체를 조합하는 것은 외과적 수술에 불과하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이와 함께 <투명 인간>(1933), <닥터 모로의 DNA>(1933), <매드 러브>(1935)등을 통해 특유의 혼종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1950년대에도 어느 정도 이어지게 된다. 한편, 유럽에서는 <메트로폴리스>(1927)와 같이 첨단 산업 테크놀로지 및 기계 문명의 시대착오적 구성을 통해 사회적 본성에 대해 탐구함으로써, SF소설에서 다루는 관점인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제시한 대규모 SF장르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아엘리타>(1924), <다가올 세상>(1936) 등의 작품 이후 장르의 주요 영역을 차지하기도 전에 그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 이는 할리우드의 자본이 유럽의 스튜디오로 잠시 흘러들어갔다가 물러간 시기와도 맞물려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1930년대 이들 ‘SF 고딕과 다르게 형성된 저예산 스페이스 오페라시리즈는 <플래시 고든>(1936), <벅 로저스>(1939)로서 행성 간 전쟁, 시간 여행 등이 등장하여 이후 SF 영화에 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것이 진지한 성찰의 계기는 나가지는 못했다. 1950년대 들어서 SF 영화 제작은 이전보다 많았지만 <지구 최후의 날>(1951) <금지된 세계>(1956)와 같은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 장르로서의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SF 영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영화가 등장한다. 그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대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 영화는 더글러스 트럼블의 지휘 하에 특수 효과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며 테크놀로지에 지배되면서 비인간화의 과정과 인류 문화를 묘사하며 평단과 관객들에게 사회적 풍자로서의 SF를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어지는 1970년대의 SF 영화에서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풍경이 지배하였다. 1970년대의 영화의 변화는 이후 SF 장르가 팽창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것이었다. 우주보다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냉소적인 결말 등을 통하여 동시대 사회에 대한 풍자라는 분명한 의도를 드러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1970년대의 창조적인 실험의 분위기 이후 1980년대에는 영화 산업의 판도가 글로벌화 되면서 대기업화된 영화 산업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스타워즈>의 전례 없는 성공으로 SF가 주목받게 되었다. 또한 <스타워즈>가 입증했듯, SF는 특수 효과가 강조되기 때문에 스펙터클한 무대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블록버스터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1970년대의 사회적 풍자와 냉소를 버리고 우주 판타지로 회귀하게 된다. 이는 1970년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위시한 보수주의 사회의 당연한 퇴행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주에 대해 우호적이던 이 당시 분위기와 달랐던 <에일리언>(1979)은 혐오스런 여체의 이미지를 징벌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신체 호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후 <비디오드롬>(1983)<플라이>(1986)에서 나타나듯 섹슈얼리티 정체성과 감염에 대한 공포는 80년대 에이즈 공포를 드러내는 알레고리였다. 사회의 불안을 SF에서 차용해 극대화 시킨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점차 증가하는 SF장르의 혼종성은 <블레이드 러너>(1982)의 주인공 데커드가 체험하는 시대와 장소, 양식들의 당혹스런 혼동을 만들어낸다. 80년대 이후의 SF영화들(<터미네이터>시리즈, <로보캅>시리즈, <백투더퓨쳐>시리즈, <토탈리콜> )은 현대 SF액션 영화의 초석이 되어 주었다. 이를 통해 기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조망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에일리언>시리즈는 재탄생을 거듭하며 호러에서 액션으로 변모해 갔으며, <쥬라기 공원>시리즈를 통해 SF는 엔터테인먼트의 주요한 장르로써 자리 잡았다. 이후 SF장르영화가 지닌 대부분의 특징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획기적인 시각특수효과와 함께 기술과 문명에 관한 공포와 관계를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실재와 인식에 대해 사유하는 <매트릭스>시리즈의 등장을 통해 SF장르영화의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SF장르영화의 정의는 늘 명확하지 않다. 그것이 SF장르의 특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포스트모던의 특징인 모호성의 최전선에 위치한 것이 바로 SF이기 때문이다. 즉, SF장르영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사진 영상의 전통에 도전하는 디지털화를 통하여 재현의 변화를 실천하고 테크놀로지의 변화를 문제 삼아 그것이 인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먼저 고민하며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인간에 대한 전통적 가설에 때로는 회의를 나타내며 도전하는 것이다. 재차 반복하지만 - SF장르영화는 본질적으로 포스트모던 장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SF장르영화의 흐름을 앞서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은 여타 장르와 혼합된 시각적, 전제적 SF에 더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SF장르의 본질적인 힘은 현상을 해체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과학적 성찰을 통해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흔히 SF가 지녀야한다고 생각되는 테크놀로지가 전면적으로 부각되지는 않지만, SF에 관한 장르적 본질을 통해 철학적 사고가 지닌 힘으로 풀어낸 SF장르영화를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장르의 혼합을 통해 서사적 전제로써 여타 장르를 풀어나가는 보조 장치로서의 변용이 아닌 오직 그 자체로써 SF의 장르적 특징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에 대해, 믿음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영화 <케이 팩스>(2001)SF의 장르적 상상력을 통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어느 날 케이팩스라는 행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남자 프롯이 정신병원에 들어온다. 그를 그저 정신병자라 생각하던 의사 마크는 치료도중 그의 말 속에 담긴 진실을 느끼며 혼란에 빠진다. 그가 왔다고 주장하는 케이팩스라는 곳은 세계에서 오직 몇 명의 학자들만 알고 있는 실존하는 행성이며, 그의 과학적 지식은 석학들을 능가했던 것이다. 또한 정신병원에서 특유의 지적이며 이상한 행동을 통해 정신병자들의 이해를 받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SF장르영화의 특징 중 하나인 사회풍자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프롯의 원래 이름이 로버트이며 고향은 뉴멕시코의 시골마을이었으며, 아내와 딸을 처참하게 죽인 살해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럼으로써 의사인 마크를 비롯해 관객들조차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인간의 현상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해체하기 시작한다. 프롯이 외계인인가 아닌가 하는 미스터리 요소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시선을 조금 틀어보면, 현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통해 현대 인류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어떤 범주에서든 옳을 수 있는 것인가에 관점을 맞춤으로써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며 고민하게 만든다.

 

<맨 프럼 어스>(2007)는 영원한 생명을 다루고 있다. 10년간 지방 소도시의 대학에서 고고학 강의를 하던 존 올드맨 교수가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사를 가려한다. 함께 일하는 고고학자, 신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친구들이 급작스럽게 떠나려는 올드맨을 배웅하기 위해 그의 집에 모인다. 오직 올드맨의 작은 집 안팎에서만 이루어지는 영화는 그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올드맨은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다. 14천년 전부터 살아온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이 늙지 않는 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10년마다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여기던 이야기에 친구들이 빠져들기 시작하며, 그가 자신임을 밝히게 된다. 올드맨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논리정연하며 막힘이 없다. 각각의 분야에 관한 역사적 오류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종교에 대한 정의조차 부인하기 시작하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좁은 공간에서 오직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영화 속에 긴장감과 SF장르의 경외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부처의 가르침을 중동에 전파하려다가 예수가 되어버렸다는 올드맨의 이야기를 통해 불교가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변화해 기독교가 되었다는 오래된 비주류 학자들의 논쟁을 담음으로써,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문명과 종교에 대해 오래도록 의문을 가졌던, SF특유의 장르적 재현에 충실하다. 이를 통해 현재 인류가 지닌 역사적 믿음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드러낸다 하겠다.

 

SF장르영화는 다양한 장르와의 혼합을 바탕으로 그 정의에 있어서 모호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SF 요소는 영화장르에 있어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써 차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근거 없는 공상을 바탕으로 SF적 요소를 차용하는 것은 SF장르영화라기보다 공상의 보조도구로 SF요소가 적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SF장르영화가 지닌 태생적 포스트모더니즘성을 완전히 배제한 범위 규정은 불가능하지만, 앞서 살펴본 두 영화의 예에서도 드러나듯, 단순 공상 이 아닌 과학적 근거 혹은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SF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단순히 영화적 볼거리와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차용이 아닌 SF 자체로서의 작용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1.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IMDB)에서 집계한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영화는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1977)이다. 이 외에도 50위 안에 든 SF영화는 <블레이드 러너>(1982) 13위,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3) 14위, <스타트랙 : 첫 번째 접촉(1996) 15위.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1980) 19위, <2001 :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29위, <시계태엽장치 오렌지>(1971) 34위, <브라질>(1985) 45위,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1983) 46위, <에일리언 2>(1986) 47위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