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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언제나 결심하고 잊혀져가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by kaonic 2014. 5. 7.



짧은 생, 그 속에서 결심의 때가 의외로 자주 온다는 것에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자잘한 선택이 아니다. 미래를 걸고, 목숨을 걸고 선택해야만 하는 결심의 그때는 영화보다 더 자주 있는 것 같다. 물론 과장을 좀 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언제나 진지하고도 진지하다. 그런 것들이 궤적을 만들고 내 삶의 선을 그어왔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 속에서 그러한 순간은 일분 일초, 나노초 단위로 찾아온다. 나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며 그것들의 주변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선택한다면, 그건 그저 삶을 생을 혼자서 은둔하겠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그럼으로써 바깥에서의 영향을 항상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다.


몇 일 전 맑고 상쾌한 아침 기운에 취해 즉흥적으로 북한산에 다녀온 일이 있다. 가볍게 등산화를 신고, 통풍이 좋은 기념품(부끄럽지만 2002년에 어디선가의 프로모션으로 무료로 뿌려진 아디다스 붉은 악마 티셔츠다)티를 입고, 간단한 면바지에 윈드브레이커를 걸쳤다. 오랫만에 오르는 계곡길은 힘겨웠지만, 즐거웠다. 어느새 윈드브레이커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온몸에 열기가 스며오른다. 계곡을 벗어나며 능선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히며 상쾌함을 가중시킨다. 마침 연휴인지라 오르는 사람이 많아서 사람에 부대낄까 걱정했지만, 계곡길의 험준한 코스는 힘겨워서 회피대상인가보다. 스쳐가는 사람이 드문드문하다.


정상 부근에 다다라 바위에 말뚝을 박아 굵은 철사줄로 엮어놓은 가이드를 따라가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여기까지는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좋았다. 별일 아닌 마음의 불쾌감이 생길 줄 전혀 몰랐다. 앞서가는 이십대로 보이는 커플이 문제였다. 중간에 잠시 쉴 때 보인 다정한 모습이 흐믓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길을 가고 있을 때 애정은 별개인 듯 했다. 남자는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여자는 머뭇머뭇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가파른 경사 위에 세워진 말뚝과 줄 만이 안전을 보장해 줄 따름이다. 비교적 안전한 코스긴 하지만 주의여하에 따라 조금만 미끄러져도 절벽으로 굴러떨어질 지경의 길이다. 물론 그 길에서 사고를 목격한 적도 없고, 사고를 당한 적도 없지만, 상황에 따라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 내 앞에서 여자가 미끄러져 내렸다. 자칫 넘어지며 미끄러진다면, 말뚝과 줄 사이의 틈으로 떨어져 내릴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그 여자가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말뚝과 줄을 잡고 몸을 기대어 막아섰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기는 형국으로 흘러들어왔다. 당황한건지 그 여자는 내게서 떨어질 생각도 안 하고 안겨 숨을 헐떡이며, 고맙다고 웅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겁을 집어먹은 여자는 나를 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건지 남자가 되돌아왔다. 억센 팔로 내게서 그 여자를 떼어낸다. 내게 눈빛도 주지 않은 체 그렇게 여자에게 무언가 속삭이며 여자를 끌고 사라졌다. 여자는 머뭇하며 내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입을 열지 않고 멀어져 갔다. 그렇게 멀어지며 뒤돌아 흘깃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 살의가 느껴진다. 순간의 선택-결심은 이렇게 보답받지 못하고, 깨름직한 불쾌감을 안겨주고 앙금을 남겼다. 그리고 정상을 밟았다.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너무나 많이 올라 다양함을 겪으면서 느끼는 언제나 똑같은 풍경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 전까지는 분명 기분좋은 순간들이었다. 그 때 내가 막아서지 않았어도 별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심경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뒤덮은 세월호 사고을 생각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반향이 올지 두려워하며 자기중심적 급급함에 휩쌓여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책임을 떠념겼기에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고 더욱 켜졌을테니까. 어쨌든 나의 행동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내 의도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분명 알고 있으며, 비슷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건 언제나 익숙치 않고 감정적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괜한 생각. 괜한 서운함이겠지.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 행위를 남에게 했을 뿐인데, 모두가 그런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찝찝한 건 찝찝한 거다. 내가 받고 싶지 않은 부당함을 남에게도 배풀지 않는다. 그러기위해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들은 정말 불편하지 않은걸까?

남 탓을 함으로써 부끄럽지 않은걸까?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겠지. 

그리고 그렇게 살아들 가겠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