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시절, 일본어 조차도 전혀 못 읽는 가난뱅이 주제(자학중?)에 없는 돈 쪼개가며 월간 뉴타입을 사기위해 매달 명동 중국대사관 앞의 일본서적을 파는 서점에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당시, 친구의 삼촌되는 분이 서점을 운영하고 계셨기에 친구와 함께 얼굴을 익힌 이후로는 꽤 저렴하게 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매달 한 번은 드나들던 그 서점에서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접할 수 있었다. 좀더 나중에는 회현지하상가에서 LD를 비디오테이프에 복사해준다는 것을 알고 명동에 들렀다가 회현에 들러서 복사 주문넣고, 주문했던 것을 찾아오는 코스를 밟기에 이른다. 그렇게 극장판 <마크로스>를 접할 수 있었으며 이후 그 시절 최고의 아이돌은 자연스럽게 '린 민메이'가 되어버렸다. (마크로스 TV판은 AFKN에서 해주던 로보텍으로 감상)
당시, 읽지도 못하는 뉴타입의 책장을 넘기며 '알흠'다운 일러스트를 바라보고, 용돈을 모아 복사해온 애니메이션을 자막도 없이 감상하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희열에 불타올랐다. 그렇게 혼자 타오르던 불꽃은 PC통신 상의 애니메이션 동호회의 설립으로 인해 폭이 넓혀지는 기회에 맞닥뜨리게 된다. 비록 화면 상에 자막은 없더라도, 대본을 캡쳐해서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로 인쇄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며, 대사를 읽으며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화면보며 대사에 맞춰 다음 스크립트를 읽어주는 행위는 꽤 진지하게 대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애니메이션 감상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마크로스>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열렸으니, 이는 바로 성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성우를 눈여겨 본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여러 성우의 특성과 함께 출연작품. 그리고, 활동사항을 조금쯤은 꾀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차츰 성격이 변해서 작품 자체만을 바라보게 된 요즘에는 어느 작품에 누가 성우였다던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목소리만으로 또렷히 구분했던 성우의 이름이 지금에 와선 망각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당연히 최근의 성우들은 누가 누군지 사진을 보여줘도 모른다. 그럼에도, 단 한 명. <마크로스>에서 린 민메이의 성우를 맡았던 이이지마 마리에 대해서는 확실히 기억할 수 있으며, 최근의 성향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간혹 들려오는 신곡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그러던 참에 오랫만에 이이지마 마리가 떠올라 그녀의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아아. 이 아줌마 살 빠진 것을 제외하면 변한게 별로 없네, 참 곱게 늙었구나 싶은 것이 마치, <마크로스 플래쉬 백>의 나이든 민메이가 연상되니 감회가 새롭구려~~"하며 덜덜덜 떨었다.
이이지마 마리 (2006)
어쨌든. 성우로써 가수로써 아이돌의 입지를 단단하게 구축한 이이지마 마리는 영원한 린 민메이로써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다. 이후 마크로스 관련 음반의 발매와 함께 가수로써 최고의 절정기를 구가하게 된다. 89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미국의 프로듀서 제임스와 결혼하여 그때부터 음악적 성향에 팝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한다. 90년대 초반까지도 거의 매년 라이브 뮤직을 개최했으며, 특히 피아노를 치며 라이브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 중에 쌍둥이 아들도 낳고, 이혼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활 끝에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이이지마 마리는 사실 성우라기보다 가수겸 음악가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린 민메이의 성우로써 데뷔하고, 마크로스 TV판의 녹음이 끝난 이후 데뷔 앨범 <ROSE>을 발표 했으며, 이후 마크로스 극장판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의 성우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우활동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음악가보다, 성우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시절 <마크로스>의 민메이로써 수 많은 오덕후들을 양산시키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써 각인된 탓이리라. 이러한 각인 효과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서 90년대 후반까지도 마크로스 관련 음반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1997년 8월 마크로스 15주년 이벤트 참가와 함께 그해 12월 발표한 마크로스 15주년 CD <프렌즈~시공을 초월하여>를 발표한 이후에는 마크로스 관련 음반의 발매를 피해 왔다. 수많은 팬들은 민메이로써 발표한 노래를 떠올리며 또다른 그녀의 음악은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 치듯 자신만의 음반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그녀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럼에도 민메이의 성우 이이지마 마리라는 기억은 절대로 지울 수 없을 것이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은 그녀에게 있어 음악적으로 조금 섭섭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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