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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빗길을 걸으며 세상을 바라보면

by kaonic 2007.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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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을 걸으며 세상을 바라보면 반 투명한 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관조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에 빗속의 나는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고, 빗소리에 동화되어 버린다고 생각된다. 비가 그치면 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단지 생각일 뿐 정말로 동화되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가끔, 그렇게 흐트러져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언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건 두려움과 가깝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건 죽어버리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더욱 두렵게 생각 되어지는 것이다.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밀려오는 두려움 같은건 상당히 모순적이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가끔 빗길을 걸으며 눈을 감으면 세상은 보이지 않고 빗속을 헤메이는 물고기가 보인다. 무채색에 가까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투명하고 촛점없는 공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손을 흔들어주면 마치 존재 자체를 부인하듯 몸을 돌려 저 멀리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멍한 표정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한 점이 되어 그곳에서 물방울들이 쏟아져 나오곤 하는 것이다. 물방울들은 온 몸을 휘감다가 이윽고 그들이 왔던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