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혁명을 일으킨 <토이 스토리>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단한 호평을 받은 픽사의 단편 모음집 출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이를 통해 픽사는 물론 컴퓨터 애니메이션계의 전반적인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롭다.
1979년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사업부는 <스타트랙2>와 <피라미드의 공포>등의 컴퓨터 그래픽을 제작해 새로운 기술을 통한 영화제작의 가능성을 열었다. 1984년에는 세계 최초로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유머가 담긴 실험적인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인 <안드레와 월리 꿀벌의 모험>을 제작했다.
1980년대의 컴퓨터 그래픽은 프로그램을 통한 제한적 구현으로 단순한 움직임과 기술적 효과를 보여주는데 그쳤기에 이 작품은 매우 혁명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이후 1986년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픽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에 픽사는 정부와 의료기관에 고성능 그래픽 컴퓨터인 픽사 이미지 컴퓨터 하드웨어를 판매하는데 주력했었다. 하드웨어의 판매가 부진하자 이를 홍보하기 위해 1986년 존 라세터를 필두로 단편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컴퓨터 그래픽 학회인 시그라프에 발표되어 큰 찬사를 얻었다. 이후에도 하드웨어 판매 영업이 부진하자 존 라세터가 이끄는 애니메이션 부서가 컴퓨터 애니메이션 광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매년 새로운 단편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제작함으로써 테크닉과 스토리텔링의 향상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그 빛을 보게 된다. 1988년에 미완성인 채로 시그라프에 발표한 <틴 토이>는 관객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픽사의 가능성을 알아본 디즈니는 픽사에 3D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안했다. 드디어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의 PDA, 심지어는 MP3 플레이어보다 못한 연산속도를 가진 1980년대의 컴퓨터 시스템으로 매년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도전 정신이 그 유명한 <토이 스토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렇기에 <토이 스토리>의 이후, 지속적으로 극장용 작품을 제작하는 중에도 픽사는 그들의 기술을 비롯해 재미있는 연출기법을 연마하기 위한 실험적 장(場)으로서의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역시 꾸준히 해왔다.
1. <안드레와 윌리 꿀벌(THE ADVENTURES OF ANDRE’ & WALLY B./1986)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 안드레 앞에 꿀벌 윌리가 나타난다. 안드레는 겁을 먹고 윌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치지만, 화가 난 윌리에게 따끔하게 벌침을 맞고 마는데….
2. <룩소 2세(LUXO JR.)/1986> 책상 위의 스탠드 룩소에게 어디선가 공이 데굴데굴 굴러온다. 룩소는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이내 그것이 룩소 2세의 장난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룩소 2세의 장난은 점점 심해지는데….
3. <레드의 꿈(RED’S DREAM)/1987> 외발 자전거 레드는 50% 할인이라는 가격텍을 달고 자전거 가계 구석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꿈속에서 레드는 서커스단의 어릿광대와 함께 멋진 쇼를 펼쳐 보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게 되는데….
4. <틴 토이(TIN TOY)/1988> 장난감 병정은 장난감들을 괴롭히는 아기를 피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침대 밑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장난감 병정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기에게서 피신한 다른 장난감들과 만나게 된다. 한편 장난감을 잃은 아기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장난감 병정은
웬지모를 책임감에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데…
5. <장식품(KNICK KNACK)/1989> 이글루 모양의 유리공 속에 갇혀있는 눈 사람 닉은 예쁜 인형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서 탈출을 계획한다. 그러나 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출은 그리 만만치 않고, 결국 유리공과 함께 책상 아래로 떨어지는 최후의 탈출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닉은 유리공
바닥에 있는 비상 탈출구로 나오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떨어진 곳은 바로 어항! 설상가상으로 그의 위로 또 다시 유리공이 떨어지고
마는데….
6. <제리의 게임(JERI’S GAME)/1998> 한
적한 공원에 할아버지 한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서 체스판을 펼친다. 그의 이름은 바로 제리. 그러나 게임 상대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고, 알고 보니 제리의 상대는 바로 자기자신. 드디어 체스 게임이 시작되고 제리는 혼자서 힘들게 양쪽 자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가슴 졸이는 비장의 승부수를 던지는데….
7. <전선 위의 참새(FOR THE BIRDS)/2001> 전선 위에 참새 한 무리가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커다랗고 다소 멍청하게 보이는 큰 새 한 마리가 나타난다.
참새들은 큰 새를 보고 자신들과 다른 모습에 상대도 하지 않고 놀려대지만, 눈치없는 큰 새는 참새들과 놀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간다.
8. <마이크의 새 차(MIKE’S NEW CAR)/2002> <몬스터 주식회사> 타이틀에 삽입되었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마이크가 자신의 새 차에 설리를 태우고 자랑하려다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결국 마이크는 새 차를 타보지도 못하고 폐차(?) 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9. <점프(BOUNDIN’)/2004> 자신의 아름다운 양털에 자부심을 느끼던 양이 양털을 깍이게 되자 자심의 초라한 모습에 낙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큰 뿔 사슴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라는 충고에 희망을 잃지 않고 즐겁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10. <잭잭의 공격(JACK-JACK ATTACK)/2005> <인크레더블> 타이틀에 삽입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기 잭잭이 보모 커리와 함께 보낸 상상을 초월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11. <원 맨 밴드(ONE MAN BAND)/2006> 한적한 도시의 광장에 어린 소녀가 분수에 동전을 넣기 위해 걸어온다. 소녀를 본 거리의 악사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멋진 음악을
연주해서 소녀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건너편에 또 다른 거리의 악사가 있었으니, 이제 소녀의 동전 한닢을 걸고 두
악사의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되는데…
12. <메이터와 유령(MATER AND THE GHOSTLIGHT)/2006> <카> 타이틀에 삽입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장난꾸러기 견인차 메이터가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다가 오히려 자신에게 달린 렌턴을 유령불로 오해하면서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다는 내용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13. <리프티드(LIFTED)/2007> 외딴 시골집 위에 외계인의 우주선이 등장한다. 외계인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인간을 우주선으로 데려 오기위해 모종의 기계를 작동
시키지만, 작동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서 데려오는데 실패한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급기야 외계인은 메뉴얼까지 뒤지면서 기계를
조종해 보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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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단편 모음집 Pixar Short Films Collection - Volume 1>은 1984년에 제작된 <안드레와 월리 꿀벌의 모험>을 비롯해 가장 최근인
2007년에 발표한 <리프티드>까지 총 13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어, 픽사의 흐름을 면면히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들 단편에서는 무한한 상상력과 여전히 녹슬지 않은 재기발랄한 픽사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