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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스크린 속의 20세기 소년

by kaonic 2008.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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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직은 이십세기를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비록 시간과 장소는 조금 다르지만, 그 끝무렵을 지나온 기억들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 20세기 소년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들은 세기말의 꿈을 꿨고, 두려움에 비해 아무 일 없는 듯 세기를 넘어섰다. 그 꿈결같은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하리. 우라사와 나오키는 그런 면에서 과거를, 20세기에서 21세기를 바라보는 동경을 너무나 생생히 그려냈다.
 
영화로 재탄생한 20세기 소년은 원작에서 한 치의 벗어남 없이 고스란히 원작의 이야기를 재현해 냈다. 같은 이야기, 같은 줄거리, 비슷한 영상과 대사. 원작의 팬이라면 그 모든 것이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느낌이 다르다. 감상이 다르다. 영화적 연출로써, 영화적 편집으로써, 실사 이미지로써, 영화 20세기 소년은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20세기 말을 지나면서 느꼈던 기대와 두려움,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익숙함에 대한 실망과 공포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을 타고 흐른다. 악간의 의외라면 ‘피의 그믐날’이 이미 한 차례 지구를 휩쓸고 간 2015년, 감옥에 갇힌 50대의 오쵸(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이 오쵸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될 것 같다.)가 회상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어서 중간과 끝에 차례로 등장하며 지나간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편집되어 후에 등장할 2부에서 벌어질 오쵸의 중심적인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이미 모든 줄거리를 알고 있기에 친구의 등장과 친구의 정체에 대한 미스테리가 미스테리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긴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의 역량 덕분이리라.
 
그러고보니 츠츠미 유키히코는 코믹 추리드라마 <트릭>, 멜로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멜로영화 <연애사진> <자학의 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공포영화 <사이렌>, 추리드라마 <소년탐정 김전일> 등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연출했다. 이 얼마나 다양한 한 장르를 연출했단 말인가.(개인적으로 이중 쵝오는 자학의 시.) 이런 배경속에서 원작자인 우라사와 나오키가 각본에 참여함으로써 원작을 뛰어넘기보다는 충실한 재연을 목표로 제작되었으니, 초반의 20세기 소년에 열광할 수 있었던 그 힘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겨 있다.

2009년 초에 2부가 개봉한다는데 보고싶어 어찌 기다릴꼬.
 
어쨌든 앞으로의 문제는 원작의 충실한 재현으로부터 발생할지도 모른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되어 20세기 소년의 모든 내용을 담아낼 예정이니, 뒷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다. 1부의 내용은 만화책으로써도 그 완성도가 높고, 몰입도가 탁월했으나, 영화에서 나뉘어진 2부의 시점을 지나면서 점차 기존에 제공되었던 복선이 무시되거나 변경되기도 했다.
 
접입가경으로 결말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 흐트러져, 대단원이 맥빠지면서 결론으로 "그래서 인간들은 쭈욱 살아남아 어떻게든 잘 살고 있습니다."가 되어버렸으니, 영화에서도 이렇게 흘러가면 곤란하다. 물론 전반부의 이야기에 너무 큰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에 뒤가 뭐 이래? 하는 삐뚫어진 감성의 작용도 조금은 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영화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 쓸데없는 기우일게다.

아무튼 <20세기 소년: 1장-강림>은 개인적으로 충분히 재미 있었다. 모든 내용을 전부 알고 있더라도 충분히 손에 땀을 쥐고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9월 11일 개봉이라더니 10일 저녁부터 상영을 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