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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애니메이션

그녀는 예뻤다. - 사랑, 그 개별적 통념

by kaonic 2008.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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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국 최초로 실사 촬영한 영상에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그려 넣는 로토스코핑 방식으로 제작된 일명 애니그래픽스 영화다. <그녀는 예뻤다>를 이야기하자면,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을 거론 할 수밖에 없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웨이킹 라이프>를 통해 로토스코핑 기법을 시험했으며, <스캐너 다클리>를 통해 완성해냈다.
 
<스캐너 다클리>의 공들인 작화는 마치 실사영상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평을 듣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대단한 것은 새로운 표현에 있어서 통일된 선과 색감을 통해 작화 애니메이션의 기본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익환 감독은 세 남자가 한 여자와 만나면서 전개되는 <그녀는 예뻤다>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우화적인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승원 애니메이션 감독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로토스코핑 기법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을 시도했다.

<그녀를 예뻤다>를 들여다보니, 디지털을 통해 아날로그의 느낌을 끌어내고 싶었다는 최익환 감독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너무 허술해서 아날로그의 느낌이 심하게 풍긴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은 “로토스코핑을 통해 실사에 다가가려한다면 굳이 애니메이션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전체 화면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걸림돌이 아닌가.

건국대, 홍익대, 호서대, 순천향대, 계원대 등 다섯 학교의 애니메이션 학과 학생들이 참여한 이 작품의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은 한 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장면과 장면의 색감은 물론이거니와 이미지의 획일성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장면의 디테일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선과 색의 표현에서도 통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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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영화는 작품 안에서 상황에 따른 구성과 색감의 통일성이 무척 중요하다. 그러한 요소들이 하나의 영화적 언어로써 구성되기도 한다. 그건 애니메이션의 탈을 쓰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부 장면에서는 하나의 이어진 컷임에도 색이 갑작스레 변한다. 이건 가장 일반적인 예이다.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컷들이 상관관계를 잃고 있으며, 참여한 대학팀의 숫자이상으로 장면의 분위기가 구분될 정도다. 시간에 쫓긴 탓인지 실사 영상에 덧그리지 않고, 필터효과와 외곽선만 살짝 그려 넣은 부분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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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장면들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감독이 의도한 애니메이션의 우화적 느낌을 성공적으로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면 좋게 말하면 미완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실패다. 그만큼 영상이 들쭉날쭉하다. 심지어 연우(박예진)의 모습은 장면마다 너무 달라서 목소리를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를 보는 것 같다. 시간에 쫓기는 TV애니메이션에서 가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를 작화가 붕괴되었다고들 한다. 분명 같은 캐릭터인데 그림의 느낌이 너무 다른 것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최승원 애니메이션 감독이 영상의 스타일을 위해 무엇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하다못해 기상조건과 시간 및 장소에 따른 색 지정과 캐릭터의 방향과 빛에 따른 스타일의 정의라도 적확하게 해 두었다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영상만으로 작품을 판가름 한다면 봐서 뭐하나 싶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죽마고우인 30대 남자 셋이 한 여자와 엮이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충분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이 비록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키덜트가 대세라 했던가. 30대 중반을 넘어섰음에도 천진함을 벗어던지지 못한 세 남자의 우화적 일상이 마음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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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죽마고우 세 친구. 돈벌이는 경찰이 최고라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경찰학교를 거쳐 파출소 소장이 된 일권은 더 이상 뒷돈이 통하지 않는 민주화바람이 불어오자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돌연 귀국한 그의 유일한 목표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신부감을 골라 결혼하는 것. 가슴 아픈 연애에 실패하고 아프리카 외교관을 향한 꿈까지 포기하게 된 태영은 심심하면 어설픈 자살소동을 벌이는 영어 보습학원의 강사이자 과격한 로맨티스트다. 첫사랑이었던 중학교 영어선생님의 이름이자, 대학시절 우연히 맺은 관계로 제니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에 대한 환상을 간직한 성훈은 오직 영어특기 하나로 대기업에 입사하고, 프로농구 용병 통역사가 된 순정파다.
 
사랑에 대해 너무 다른 생각을 가진 세 친구들 앞에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 연우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혼란이 시작된다. 그들이 만들어가고 싶었던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

출시된 DVD는 한 장의 구성임에도 풍부한 부가영상을 수록했다. 이를 통해 제작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며, 실제로 촬영된 영상과 애니그래픽스 영상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