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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님은 먼곳에 - 먼곳으로 떠나버리는 나의 착한 혼 이여...

by kaonic 2008.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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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를 지나, <즐거운 인생>을 지나, 종착역이라 알려진 <님은 먼곳에>도달 했다. 음악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감정을 잡아냈던 이준익 감독의 전작이 나는 좋았다. 그의 음악영화 3부작의 마지막이라 알려진 <님은 먼곳에>를 그래서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만의 풍자를 통해, 좋은 음악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없는 가벼움을 느꼈을 뿐이다. 미비한 설명과 함께 직선적으로 표현된 캐릭터들과 끝내지 못한 에피소드까지, 모든 것이 이유 없이 그저 착.하.게. 흘러갈 뿐이다.

우리의 주인공 순이는 동네 아주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3대 독자인 남편 상길은 군대로 도망 갔으며, 시어머니는 대가 끊길까 전전긍긍하며, 한달에 한 번씩 순이를 상길이 있는 부대로 면회를 보낸다.

절제된 대사와 함께 슬픈 듯한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순이는 시어머니의 강요인지, 스스로 남편을 찾아가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외박을 나와 여관 방에서 마주 앉은 순이와 상길은 어색하기 그지 없다. 상길은 똥 씹은 표정으로 술만 마실 뿐이다. 바로 앞에 앉아 있지만, 님은 먼곳에 있는 셈이다. 잠시 후 밝혀진 원인은 상길에게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만난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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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순이와 상길의 사이는 무엇인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긴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으로 봤을 때, 부모들끼리 정해진 혼처였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상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순이. 그녀의 주눅든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찾을 수 없다. 둘 사이에 사랑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상길은 함께하지 못한 애인을 그리워 할 뿐이다. 3대 독자임에도 군대에 간 이유가 바로 순이에게서,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도망치기 위함이다. 어느날 부대로 날아온 애인의 이별 편지 한 장,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길은 사고를 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자원하게 된다. 애인이 떠나갔으니 이제 될데로 되라는 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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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떠나버린 우리의 3대 독자 상길씨. 그의 어머니는 아들 걱정으로 살짝 맛이 가버리고, 베트남으로 떠나겠다고 성화다. 시어머니의 성화에 이에 어쩔 수 없는 마음 반, 스스로의 의지 반으로 우리의 주인공 순이는 베트남으로 찾아갈 결심을 한다. 우여곡절을 겪고, 베트남에서 한 몫 잡으려는 밴드 마스터 정만을 만나 밴드를 구성해 "위문공연단"이 되어 베트남으로 떠난다. 이제 시골에서 유행가로 동네 아주머니들께 재롱떨던 시골 아낙 같잖은 흰 피부의 순이가 서서히 가수 "써니"로 대 변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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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베트남에서 밴드공연을 통해 한 몫 잡으려는 인물이다. 이전에도 베트남에서 위문공연단을 운영했었으나 멤버들의 돈을 빼돌리고 튄 전과가 있다. 게다가 이번에 또 밴드를 구성해 베트남으로 가려는 이유도 돈 때문이다. 먹고 튄 돈 그새 다 날려버린 모양이다. 설상가상으로 밴드의 가수이자 애인인 제니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려온다. 오~마이 갓! 정만은 자신의 애를 벤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녀를 내칠 뿐이다. 이후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제니의 소식은 알 수 없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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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도착한 밴드는 이름하여 와이낫. 하지만, 공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정만은 이미 베트남의 사이공에서도 신용도가 바닥이였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위문공연을 시작하지만, 순박(?)한 순이는 첫 공연을 망치고 만다. 이미 바닥에 떨어진 신용도 위에 공연조차 망쳐버리고 나니 어디에서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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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상길은 작전 도중 길을 잃고 소대원들과 함께 베트남의 울창한 숲을 헤메게 된다. 무심한듯 쉬크한 모습으로 일관하시더니 그 와중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한 번 찍어주시고, 나중엔 <밴드 오브 브라더스>도 한 편 찍어주신다. 참 알 수 없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모인 밴드 맴버들은 돈만 생각하고, 나중에 합류한 용득씨는 어찌나 착하신지 자신의 돈을 가지고 튄 정만을 용서하고 밴드 활동에 참여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순이한테 반해버리는 용득씨. 끈임없이 유부녀에게 신경써주고 보살펴 준다. 나중엔 순이가 섹쉬한 써니의 모습으로 미군 부대에서 노래부르며 번 돈을 그녀의 감정을 무시한다는 이유 만으로 태워버린다. 매우 유난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순이를 제외하고 밴드 유일의 인간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군의 부대를 돌아다니며 보금품을 댓가로 챙기고 공연하던 와이낫 밴드. 드디어 연대급의 큰 규모에서 공연을 하는가 싶더니 공연 중에 포격을 받고 부대는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그 와중에 정만의 지휘 아래 비축 무기를 챙겨 급하게 도망친다. 하지만, 순이가 남편이 있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차를 세우게 만들고, 전쟁터에서 멈춰버린 일행은 베트공에게 휩쌓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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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들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된 와이낫 밴드, 땅굴을 파는 아주 좋은(?) 경험도 하면서 지하세계 체험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에 의해 구출된 이들. 과연 위문공연으로 돈을 벌고, 순이는 남편을 찾을 수 있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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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순이는 사랑하냐는 물음을 남긴 채 베트남으로 떠나버린 상길에게 어떤 대답이 하고 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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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자신의 밴드 멤버들에게 사기치고 베트남에 버리고 도망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제니를 무참히 버린, 순~! 막장스런 "정만" 조차 순이 앞에서는 서서히 착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렇다. 이 영화 너무나 착한 영화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 이면은 철저히 가리고 순수하고 좋은 이미지 만을 느끼게 해주려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순이의 노래와 시선 또한 너무 순진(?)하다. 또한, 위문공연의 와중에도 한국군은 순진하게 공연을 즐기고, 미군은 참 더티하게 공연을 즐긴다. 뭐 이런 극단적인 대비가 다 있나. 이런 점이 영화적 현실감을 잃게 만든다. 결국 착해지려는 모순에 가득찬 모습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메기 시작한다. 억지스런 감동이 흐르게 되고, 억지스런 상황이 교묘하게 접합된다. 순이는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 같더니, 결국 변한건 별로 없어 보인다. 착한 영화는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이 세상이 아직 살만 한 곳임을, 예전 세상이 아무리 안 좋아도 그래도 살 만은 한 곳이였음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주게 마련이지만, 너무 억지스럽게 착해도 쫌! 그렇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처럼 완전히 쌩까고 노골적으로 착해지는게 나을 뻔 했다.

덧.
평일 낮에 관람했는데, 주변엔 나이드신 분들이 가득했다. 보통 아무리 인기 좋은 영화라도 평일 낮엔 관객이 적지만, 아무래도 영화의 컨셉이 이렇다 보니,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보시는 듯 하다. 덕분에 평일 낮이나 오전에도 관람객이 잔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