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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꿈과 희망의 시대는 사라졌다.

by kaonic 2009. 8. 14.

그 시절에는 분명 확고부동해 보이는 꿈과 희망들이 존재했다. 과학교양서에 따르면 2000년이 되기 전에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 고층빌딩이 엄청나게 밀집된 도시에는 튜브로 된 도로망이 엮여 있을 것이며, 다양한 맛의 캡슐 한 개로 한끼 식사가 해결 되리라 예언했었다. 모두 지구에서 벌어질 일이었다. 시선을 바다로 돌리면, 해저에는 수 많은 해저 도시들이 생성되고, 식량은 바닷속에서 자라는 플랑크톤을 이용해 제작되며, 망간은 정말 무한한 자원이 되어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2000년을 넘어 우주로 시선을 돌리면 이미 인류는 목성에 다다랐으며, 지구와 화성의 사이에는 수 많은 우주 식민지가 떠다니고 있고, 화성엔 식민지가 건설된 상황에 이른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인류가 이루어낼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밋밋하다.
 
찬란한 미래상은 그 시대가 오는 순간 별반 다를 게 없는 기존의 기술들이 발전해 왔을 뿐,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다양한 휴대기기들이 등장했지만, 혁명을 일으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달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을 법 했던 대한민국은 겨우 수십억을 들여 통통한 아가씨 하나를 국민의 세금으로 우주 관광을 보냈을 뿐이며, 이제 겨우 인공위성 하나를 러시아기술협력의 대한민국산 로켓으로 쏘아올리려는 참이며, 저마다 각각의 목소리를 내며 조금이나마 조화를 이루려던 세상이 다시 반목과 폭력을 거듭하던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우주관광을 다녀온 그녀는 한 여름의 더운 날씨에 온도조절도 안 되는 가짜 우주복을 입고 각종 행사에 불려다니며 진땀을 빼고 있다.

인간의 삶에 와서는 시궁창에 빠졌다.

미국을 통해 흘러들어온 신자유주의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자유경쟁 체제가 개개인의 삶에 깊게 뿌리박혀 버렸다. 이젠 모두가 적이고 아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돋보이게 하기 위해 비슷비슷한 노력들을 모두 똑같이 기울이고 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던 지난세기의 구호는 세기를 넘어오며 이미 똥통에 쳐박힌지 오래지만, 이놈의 무한 경쟁체제 속에서 단 하나의 목표로써 작용하고 있다. 모두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저 경제적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한발 뒤로 물러선 사람들이 손가락을 빨고 있을 뿐이다. 남들과 달라지기 위해 남들의 머리 위에 올라서야 하는, 고만고만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서로 견재하며 올라서는 것 만이 신분의 상승이며 자유를 가져다주는 세상이다. 결국 유치원부터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각각 다른 능력을 지닌 이들이 서로 어울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맞물려 돌아가면서 공생하는 세상은 저 멀리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도 그랬을까?

시간의 흐름 속에 어느 한 순간 조금은 나아졌다고 느껴지는 기간을 지나고, 그리 오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반복되는 일상과 비슷한 반복되는 시대를 바라보면, 웬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거니 싶어서 조금은 슬프다.

어떻게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왔나?

그러니까 시작은 발신자번호 표시제한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케이비 국민은행입니다. 고객님의 신용카드가 롯데백화점에서 118만원 결재되었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9번을...."

일하느라 집중해 있던 상황에서 받은 전화의 경고는 마음을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결국 9번을 누르고 상담원인 듯한 아저씨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국민은행입니다."  

억양이 외국인스러워! 툭 하고 끊고 나니 과거에 꿈꾸던 미래가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