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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최근 친절한 분들을 자주 만나니 기분이 좋다

by kaonic 2007. 4. 5.
일요일 오후,

아버지께서 칼국수를 만든다고 하시며 바지락을 구해오셨다. 해감을 시키면서 면은 만들기 귀찮으니 사다가 먹자고 하시길래 내가 사러 가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지난주에는 아버지께서 냉면을 만드셨다. 요즘 요리에 취미가 붙으신 걸까. 어쨌든. 아직도 활발한 우리동네 재래시장의 오래된 분식재료상에 찾아갔다. 뭔가 알 수 없는 식재료의 상자들 틈에 작은 구들이 있고 그 위에 나이에 걸맞게 적당히 살집이 오른 인상 좋은 할머니가 앉아서 TV를 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말리지 않은 칼국수 면 있어요?"
"아예. 어서오세요. 잠시만요."

친절한 표정을 한채로 할머니는 비좁은 가게의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 어디선가 차갑게 냉장된 칼국수 면을 들고 나왔다. 눈가의 주름이 웃는 모양 그대로 겹쳐있어 보기 좋았다.

"얼마예요?"
"이천원이요."

주머니를 뒤져보니 천원짜리 한 장과 만원짜리 한 장이 있기에 만원짜리를 내밀었다.

"아이고 잔돈이 없는데..."
"천원짜리가 한 장 밖에 없어서요. 그럼 옆에가서 바꿔올께요."

가게를 나서려는데 할머니께서 뒤에서 붙잡으신다.

"괜찮아요. 천원만 주고 가세요. 다음에 들릴때 잔돈을 주면 되지 뭐."
"아유. 어떻게 그래요. 금방 다녀올께요."
"글쎄 괜찮테두~ 천원만 주고 가져가."

두세번 이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도리 없이 천원만 드리고 가게를 나섰다. 마침 다른 가게에 들릴일이 있어 물건을 사고 잔돈이 나왔다. 좀전의 일이 계속 신경이 쓰여 분식재료상에 다시 찾아가 나머지 천원을 전해드렸다.

"아유. 나중에 지나갈때 주지. 미안하게시리."
"나중에 잊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괜찮은데... 총각, 이거 하나 먹고 가요."

결 국, 떡을 하나 얻어먹고 기분 좋게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기다려 아버지께서 해주신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는데, 깔끔한 국물이 일품인데다, 칼국수 면의 품질이 좋은지 면발도 부드럽고 좋았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와 함께 친절하고 인심좋은 할머니가 떠올라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덧.
다 쓰고 보니 고딩때 일기를 쓰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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