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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달마도, 그 허상

by kaonic 2007. 4. 5.
달마도를 그리는 스님

달마도는 스님들이 구도를 하거나 예술혼을 키우기 위해 그리는 수행화 비슷한 개념을 가진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달마도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강한 기(氣,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그림을 소장한 사람에게 행운을 주고 액운은 쫓는다고 하며, 최근에는 달마도가 나쁜 기운이 나오는 수맥을 차단해 병을 막고 치료까지 한다고 해서 부적(符籍) 노릇까지 하고 있다.

수험생용 달마도, 수맥 차단용 달마도, 취직기원 달마도 등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 도자기, 쟁반, 액세서리, 열쇠고리, 휴대전화 고리, 책갈피, 벼루 등 달마가 그려진 공예품과 생활용품들을 웬만한 기념품 가게나 악세사리 가게에서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제품설명으로 ‘행운’ ‘액운을 쫓는’ ‘수맥 차단’ ‘질환 치료’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표구사, 화랑 등 업계에서 추정하는 달마도 관련 시장은 연 5000억원 규모에 이른다. 통계청이 조사한 국내 역술시장의 규모가 1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달마도의 시장 규모가 역술시장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로 성장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참에 대충 연습해서 달마도 장사나 해볼까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만도 하다.

대체 달마도에 힘이. 그것도 만병통치약에 버금가며, 이 세상 모든 운을 전부 가져올 만큼의 힘이 언제부터 있었단 말이냐. SBS 백만불 미스테리극장에서 의학적 검사 장비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달마도를 붙이면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다’ ‘달마도를 보면 기 때문에 몸에 열이 난다’ ‘달마도가 수맥파를 차단한다’ ‘달마도는 전자파를 상쇄시킨다’는 속설이 의학적,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달마도는 아직 잘 팔리는 상품군을 형성하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실현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휴대폰에 금박인쇄 된 달마도 쪼가리를 달고 다닌다고 성공하거나, 무병장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기를 불어넣는다며 온갖 폼을 잡으며 달마도를 그리는 스님 앞에 줄을 서서 비싼 값을 치루고 달마도를 사서 정성들여 표구한 다음, 집에 걸어두어도 망할 집은 망하고, 흥할 집은 흥한다. 그런게 세상이다.

오죽했으면, 달마도를 그리던 시인 김지하가 “달마도는 본디 절집 수련의 한 방편이었다. 부적으로 전락한 ‘정형(定形) 달마’를 부수기 위해 마지막 전시회를 열었다. 내가 늘 경계해온 것은 달마도가 ‘만화(漫畵)’로 굴러 떨어지는 위험이다. 이제 달마를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별전시를 한 후 붓을 꺽었겠는가.

쓸데없는데 돈 좀 쓰지 말자. 달마도를 살 돈으로 차라리 불우이웃돕기를 하는게 더 낫지 않겠는가? 아님 저축을 하던가. 하다못해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먹고 기운내서 힘차게 살아가라. 역경을 헤쳐나가는데 힘이 되어주는 것은 달마도나 부적따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이며 행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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