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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지하 사무실에 흐르는 실개천

by kaonic 2007. 4. 9.
철저하게 더럽혀진 개천에서 흐르던 물이 고여버린 너무나 깜깜해서 너무나 깊어보이는 시궁창 속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는 것 같다. 햇살은 커녕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공간 속의 음침한 인공조명 아래서 온 주변을 감싼 썩는 내음에 두통이 몰려오고 코가 마비되어갈 지경이다.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한 여름에 학교 앞 개천에서 코를 쥐어 막고 돌 다리를 건널 때 맡던 악취가 떠오른다. 머리가 핑핑 돌아버릴 정도의 강렬함이다.

건물이 오래된 지라 방수상태가 미흡하여, 방수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한 여름 폭우 속에서 물이 새는 건물의 지하공간에 궁여지책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물이 흘러서 하수 집수정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작은 물길로 언제부터인가 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흐르며, 한동안 약한 악취를 풍기던 것이 요 몇일 사이에 물줄기가 거세지더니 더욱 강한 악취를 분출시키고 있다. 깨끗한 물을 흘려봐도 그때 뿐이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악취가 풍겨온다. 꽉 막힌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바깥으로 이어진 급기구와 배기구에 연결된 팬이 전심 전력으로 하루종일 회전하며 공기를 집어넣고,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덕분에 미약하나마 훈훈한 바람을 보내주던 온풍기의 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낳지 못하고 있다. 춥긴 하지만, 지금이 여름이라 생각해보면 그나마 추운 것이 낫다. 만약 여름이였다면, 그 뜨끈한 대지의 온기로 개천의 물은 따뜻해 질테고, 온갖 세균은 엄청나게 번식할 것이다. 더블어 스멀스멀 확실하게 올라오는 악취는 더욱 강렬해질테지, 겨울이라서 다행이다.

주변의 모든 정황을 고려해 판단한 결과 옆 건물에서 행한 하수도 공사 때문인 것 같다는 확실하지 못한 어설픈 결론이 났다. 옆 건물의 지하에 물이 새는 사태가 발생하고, 원인을 규명해 본 결과 건물 옆으로 지나는 하수도관이 터져서 생긴 일이였다. 그것을 수리하기 위해 하수도 공사에 돌입, 땅을 파보니 이쪽 건물에서 삐져나간 PVC 하수도 관이 그쪽으로 흘러가 터져 있었다. 옆 건물을 지을 때 흙막이 공사를 제대로 안 하고 무작정 땅파고 건물을 세운 결과였다. 확실한 해결책은 관심 없이 눈 앞의 결과만을 생각했던 업자는 삐져나온 하수관을 끊어버리고, 임의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파낸 흙으로 구명을 덮고 시멘트를 부어버렸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어디론가 흘러갈 하수관을 끊어서 중간에 막아버리니, 결국 하수는 흘러갈 곳을 잃고, 건물 벽 근처 어디선가 틈이 생겨 바깥으로 흐르기 시작한 듯 하다. 거기에 방수공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이 건물 지하의 외벽으로 흘러나온 하수가 스며들어 벽을 타고 건물 내부로 흘러들어와 조그마한 개천을 형성한 것 같다.

확실한 것 같지만, 확실치 않은 원인을 배제하기 위한 공사는 일주일 후로 예정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공사를 시작하라고 재촉하고 싶지만, 업자도 업자로써의 사정이 있는 지라 어쩔 수 없이 일주일간 악취를 참아야 한다. 덕분에 생긴 일주일의 막막함은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푸념만 늘어놓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공사를 마친 후 악취가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간절히......


현 시점에서 약 1개월 전에 공사를 마치고 악취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