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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훔쳐보기의 즐거움과 그 격차

by kaonic 2007. 6. 19.
인산인해를 이루는 주말 명동 거리 한 복판에서 "나는 미니스커트가 좋다!"라고 크게 소리치면, 10분 이내로 멋진 싸이키 조명이 달린 하얀 차를 타고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실려가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요즘에야 끌려갈 일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예쁜 얼굴. 멋진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나, 예쁜 다리를. 치마 밑으로 쭉 뻗은 탐스런 허벅지를 바라보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말해놓아도 노골적으로 바라보진 못한다. 사실. 흘깃 바라보는 것이 대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보다 스릴 있어 좋으며 상상할 수 있어 좋으며,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얼굴보고 실망할 필요없어 좋다. 그렇다고 뭘 어쩌겠는가. 눈이 즐겁고, 몸 깊은 곳의 뜨거운 한 구석이 살짝 자극받을 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바로 변태 혹은 성추행범이 되버린다. 건실한 시민과 변태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욕망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전 세계의 진실한 수도승과 이반과 함께 전혀 이성에 관심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나 그런 자극에서 헤어나오기 힘드리라 생각된다. 다만 시선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문제다. 마음에 드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멋진 다리를 뽐내며 길을 나섰는데, 느끼하게 기름 줄줄 흐르는 대머리 중년 아저씨가 게슴치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느냐, 멋진 얼굴에 쫙 빠진 건장한 몸매의 미청년이 멋진 눈빛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 지하철에서 건너편에 앉아 있는 추욱 쳐진 중년 아주머니가 치마를 입고 졸다가 다리가 벌어지는 것을 보는 것과 참하고 섹시하게 생긴 아가씨가 치마를 입고 졸다가 다리가 벌어지는 것을 보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한 여름의 콩나물시루같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시를 입은 어여쁜 여인네와 살이 닿는다고 대놓고 비비고 있으면 성추행범이 되지만, 가끔 우연히 맞닿는 부드러운 맨살의 촉감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즐거움을 주며 아무런 피해도 없다.

요컨데 훔쳐보기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 건전한 레포츠와도 같다는 말씀. 그렇다고 너무 훔쳐보면 관음증에 빠지고, 더욱 심해지면 스토커, 더더욱 심해지면 결국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지니 주의하자.

덧.
오래전에 썼던 낙서인데 뒤적거리다 발견해서 올려본다. 무척이나 솔직한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올려두니, 여친님의 눈총이 걱정스럽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