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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한 겨울, 길바닥에 누군가 쓰러져 있어도 관심없는 사람들

by kaonic 2008. 2. 19.
간만에 이른 퇴근을 하고, 여친님과 대학로에서 소주 몇 잔에 곱창구이를 먹고,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시고,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가는 길. 따뜻하고도 좋은 기분에 마음까지 녹아서 한 없이 관대한 상태. 지하철에서 내리고 역을 나서 조금 걷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 했다.
 
잠시 멈칫하며 오만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 마침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누군가 조치를 취하겠거니 싶은 마음과 응급구조대에 신고를 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머뭇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스윽 다가오는 이가 있었으니, 이른바 과거에는 "도를 아십니까?"로 유명했던, 이제는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족이 붙어버렸다.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화가 났다.

겨우 물리치고, 사람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구경하던 사람들이 사라져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저 잠깐 동안의 동정이요. 호기심의 대상이였을 뿐인가 싶었다. 누군가 찬 길바닥에 쓰러져 있어도 아무도 도우려 하지 않는 세상이 두려웠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행색이 초라한 것이 노숙자인 것 같았지만, 노인이 끌고 왔다고 생각되는 인력거를 보니 재활용품을 모아가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독거노인 같았다. 손으로 쓰윽 건드려 보니, 아직 숨은 붙어 있고, 표정으로 봐서 많이 아파보이진 않았지만, 정신을 놓고 있는 듯. 술에 취한 것이지, 혹은 지병인지, 판단 불가.

결국 119에 신고전화를 하고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그제서야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행인들이 누군가 귀찮은 일을 떠맡은 것을 깨닫고, 은근슬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 마침 화장실이 급하던 찰나 안절부절하며 구급대는 언제 오려나~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70대 전 후의 아저씨께서 급 관심 집중. 혀를 내차며 "쯔쯔, 술을 많이 자셨나. 한 겨울에 얼어죽으려고 저게 무슨 일인고."하며 말을 걸어오니 잠시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안절부절 하고 있으니, 무슨일인가 물어보는 자전거 아저씨, 차마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워서 약속이 있다고 에둘러버렸다. 고맙게도 자신이 구급차 올때까지 지켜봐 줄테니, 어서 가라고 하시니,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구급대에서 출동한 구급요원의 전화가 와서 정확한 장소를 물어 대답해 주었다. 잠시후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는데, 쓰러진 사람이 안 보인다고 정확히 설명해 달라고 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사이에 깨어난 것일까? 그냥 벌떡 일어나서 어디로 간 것일까? 지켜본다던 자전거 아저씨는 어디로 가신 것일까? 순식간에 몰려오는 답이 없는 의문들에 혼란스러웠다.

이후 다시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찾아서 데려갔던지, 없어서 그냥 갔던지 둘 중 하나. 어찌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좀 참고 끝까지 남아 있을걸 하는 후회가 고개를 들었지만, 사람이 사람을 안 믿으면 어쩌겠나 싶어 마음을 다스리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