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그녀의 휴대전화기가 고장났다. 화면이 하얗게 변해서 오직 통화만 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수리를 맡기자니 꽤 오래 사용했고,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결함도 있고 해서 다른 전화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6월 중순의 일이다.
머뭇머뭇 알아보다보니 어느덧 7월이 되었다. 소비자는 전혀 연관없고 알 수 없는 정책적인 문제와 이통사들의 개별적인 문제들의 복합사유로 7월부터는 지원금이 대폭 축소되어 안타깝게도 모든 휴대전화의 가격이 상승해버렸다. 망설이는 사이에 시기를 놓쳤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추가요소가 작용해서 구입비용이 지원되는 휴대전화기가 많이 줄어들었으며, 이른바 기능적으로 그나마 쓸만한 것들은 매장에 나와있지도 않게 되었다. 아이폰의 도입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이통사들의 간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작은 휴대전화에 다양한 기능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부가기능들은 이통사 수입원의 증대를 꾀할 바탕이 되어주었다. 국내의 수요는 이미 포화상태이고, 이통사간의 이동을 제하고는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통화료를 제외한 부가기능을 이용한 수익증대는 자본주의사회의 인격을 획득한 회사체계에서는 더욱 중요한 목표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통사의 판매에 의지해야만 하는 휴대전화 제작사들은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무조건 부가기능을 많이 집어넣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왜 그러한 목표가 소비자에게 강요되어야 하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덕분에 휴대전화를 구입하러 매장에 가보면, 큰 화면, 누군가에겐 전혀 쓸모없거나 사용조차 버거운 다양한 부가기능, 덕분에 손아귀에도 제대로 쥐어지지 않는 일반 전화기의 손잡이부분 보다 더 불편하고 얇긴 하지만 펼치면 거대한 휴대전화 밖에 안 보인다. 결과적으로 최근 발매되는 휴대전화 중엔 작고 가볍고 전화와 문자기능만 잘 되는 휴대전화가 사라졌다. 결국 시장에는 다양한 이통사 수익증대 위주의 기능이 담긴 덕분에 엄청나게 가격이 올라간 휴대전화만 남았다.
진정 나와 그녀가 원하던 것은 작고 예쁜 디자인에 통화품질 좋고 문자를 주고받는데 편리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휴대전화였지만, 그런 것은 이제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 같다.
물론 모두가 이런 점에 불만을 가진 건 아니다. 다양한 기능의 통합으로 기능많은 휴대전화 한 대만 있으면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하고, 화상통화도 하고, DMB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듣고, 인터넷도 하고, 스케쥴 관리도 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수 많은 기능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있는 반면, 휴대 전화는 휴대전화로써의 소임만 제대로 할 수 있고, 주머니에 가볍게 넣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있다.
이런 소비자의 다양성에 부응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USIM칩이다. 이통사에 가입을 해 USIM칩을 받기만 하면, 같은 통신사 폰 사이에서 USIM 칩을 자유로이 바꿔 쓸 수 있도록 락이 제거되었고, 최근에는 통신사간 락까지 사라져서, USIM 칩을 중심으로 사용자들에게 휴대전화 단말기 선택의 자유를 보장했다.
한 번 구입하면 아무 단말기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발표되었던 USIM은 뚜껑이 열리고 시일이 흐르고보니 단말기 종류에 따라 지원 여부가 갈렸으며, 사용이 가능해도 기능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USIM을 단말기를 구입할 때마다 새로 구입해야 하게 되었다. USIM의 도입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리라 생각했지만, 바뀐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여전히 비싼, 다양한 기능과 넓은 화면 덕분에 더욱 가격이 올라간 휴대전화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 지원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타 이동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하거나 신규가입이란 수단이 있는데, 5~90만원 대의 단말기를 제값 다 주고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고보니 휴대전화기의 가격이 웬만한 넷북이나 저렴하게 나온 노트북보다도 비싸다.)
이통사에 요구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던 제조사는 다양한 기능 덕분에 엄청나게 올라간 휴대전화의 단가를 소비자들이 큰 고심없이 구입할 정도로 내릴 수 없는 한 이통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한 서비스에 충성하는 고객은 그저 이통사의 봉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환경 하에서 USIM은 오히려 추가로 소비자의 돈을 더 긁어가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휴대전화 한 번 구입할 때마다 매번 이렇게 많은 정보를 접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난다. 이통사에서는 USIM을 발급받고 부가서비스를 선택하고, 사용할 휴대전화는 그냥 전자제품매장에서 혹은 이통사와 상관없는 휴대전화 전문 매장 쯤에서 가볍게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음 좋겠다. 그럼으로써 제조사에서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해서 다양한 제품을 내보낼 수 있을 것 아닌가. 소비자는 자신에게 맞는 이통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에효~ 답도 없는 생각이 줄줄 흘러나오는구나. 전화기를 교체하는 경험을 할 때마다 이런 글을 한 번 씩 쓰는 것 같아 민망하네. 곧 어머니 전화기도 교체해드려야 하는데 말이지. 툴툴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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