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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3D, 기술이 아니라 내용이 문제다.

by kaonic 2010. 2. 8.
아바타를 기점으로 관련 기관과 언론에서는 대 혁명이라도 일어날 듯 퍼덕거리고, 온갖 분야에서 3D 입체영상에 대한 말을 뿌려대고 있다. 3D 입체영화가 아바타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흑백 영화시절부터 존재해왔던 3D 입체영화가 왜 이제와서야 이렇게 엄청난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처럼 느껴지게 되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존에도 3D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아바타처럼 본격적으로 모든 장면에 활용되진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입체영화를 만드는 것은 제작 단가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작품(주로 공포영화)에서 몇몇 장면을 강렬한 표현과 생생한 현장감으로 전달하고 싶을 때 사용해 왔다. 그러한 시도는 실험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으며, 관객의 입장에서도 화면에 나타나는 3D 표시와 함께 안경을 썼다 벗었다하는 불편함을 초래했다. 이와 함께 입체영상이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입체감의 극대화를 꾀한 장면의 구성으로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운 곤란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심각한 경우엔 영화를 보러 온 것인지 놀이공원에 깜짝 놀라기 위해 온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마저도 없어서 못 볼 정도로 그간 입체영화의 상영이 드물긴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3D 애니메이션이 다수 제작되고, 이를 입체로 상영하면서 서서히 입체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3D 애니메이션은 입체로 전환한다고 해서 제작단가가 급격하게 상승하지 않고 그 제작 프로세스상 한두개의 노드만 더 추가하면 손쉽게 입체영화로의 전환이 가능했기에 본격적인 입체상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상영기술의 발전도 한 몫했다. 이 흐름을 타고 일부 블록버스터 작품은 액션장면을 3D로 제작, 상영하기에 이른다. 이와 함께 서서히 입체영화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블러디 발렌타인과 같은 영화가 등장했다.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입체영상에 집중한 나머지 스토리에 소흘했는지 어쨌는지 제작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100% 입체영화임에도 별다른 찬사를 얻지 못했다.

그런 시기를 거쳐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한 혁명적 물량공세 3D입체영화인 아바타가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와 달리 월등히 높은 질감의 영화적 세상이 통채로 상영됨으로써 사람들은 기대를 품게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전의 입체영화와는 달리 기존의 영화적 구도로 아바타의 화면을 구성했다. 3D 입체영화라고 해서 꼭 입체감을 극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듯 자연스런 구도의 입체영상을 보여준 것이다. 이로써 과장된 입체감이 아닌 보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입체영상이 구현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잘짜인 스토리 구성이 한 몫하지 못했다면 아바타는 그 어떤 기술과 제작비가 담겼다해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입체영화라는 틀 속에 안주하지 않고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한국에서 바글바글 끓어대고 있는 3D 입체영화에 대한 관심이 뭔가 이상하다. 지난달 2010년 1월 13일 오후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된 영진위의 2010 업무계획 보고를 살펴보면, 인력구축부터 시작해서 제작지원까지 3D영화 발전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고 한다. 교육센터 구축 및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약 7000명 가량의 인력을 양성할 예정이란다. 이를 통해 해외로부터 3D 영화작업의 수주에 대처하고 고용을 창출하려 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더블어 3D 전환 업체 스테레오 픽처스 코리아와 MOU를 체결해 인력양성 및 기술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쯤에서 스테레오 픽처스가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2009년 가을부터 언론을 타기 시작한 기업이다. 지속적으로 인력을 모집하고 있는지 모집관련 공고가 꽤 눈에 띈다. 살펴보면 "모집분야는 2D ->3D 전환 전문인력 : 기존 2D영화를 3D영화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미국 영화사와 계약하여 한국에서 변환작업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포토샵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라고 씌여있다. 으응? 포토샵은 만능이구나?!  조금 알아보니 교육인턴을 모집한다고 되어있는데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학원필이 충만하다. 3개월의 연수과정 후 작업이 가능하면 직원으로 전환한다는 것(급여수준은 참 거시기하다. 전환 기술의 한 요소로써 노가다꾼이라는 것이 아무리 단순한 일을 하게 된다지만,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의 인건비 참 싸다. 이러니 이쪽 업계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 드물지). 참고로 또 하나의 3D 변환 업체 리얼이미지가 눈에 띄는데 언론플레이나 정부와의 연계는 없어보이지만, 실제 활용가능한 기술력이 있어보인다. 스크린샷 한 장 밖에 보진 못했지만, 매쉬를 이용해 깊이감을 설정한 후 변환한다는 개념이 그럴듯 하달까. 이쪽도 현재 인력모집 중. 반면, 화제가 되고 있는 스테레오 픽처스에서는 무엇하나 가시적으로 기술적 요소를 제시한 것이 없다.

어쨌든 입체영상이 올해의 영상업계의 화두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한국영화들을 생각해보자. 매년 수 많은 영화가 등장하고 사라져간다. 그 중에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다시 보고픈 명작이 있는 가 하면, 당시에만 유행을 타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유행작이 있는가 하면, 돈을 주고 다시 보라고 해도 보고 싶지 않은 괴작이 있다. 대부분은 유행작이거나 괴작일 뿐이고 다시 보고픈 영화는 무척 드문 것이 현실이다. 특히 기술적 성과를 자랑하던 영화들은 대부분 유행을 타고 멈추거나 유행조차 타지 못하고 괴작으로써 흘러가버릴 뿐이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그러했고, 구미호가 그러했으며, 조금쯤 유행을 탔지만 다시보라면 죽어도 못 볼 퇴마록이 그러했다. 모두 당시 첨단의 기술력을 도입했다고 자랑하던 작품들이다. 기술력도 기술력이지만, 그것을 풀어낼 이야기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닥치고 생각 좀 하면서 아바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바타를 3D 입체영상으로 관람하지 않더라도 재미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쯤에서 정말 생각해야 할 것은 3D 입체영상 기술력이 선진국(이라고 쓰고 미국이라고 읽는다)에 비해 어느정도 뒤쳐졌는가를 논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 그 자체를 논해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 영화는, 애국심이 대단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국내산 영화는 애국심만 가지고도 흥행이 되지 않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블럭버스터는 돈 들인 만큼의 영상을 제공하지만, 아야기가 받쳐주고 조화로운 완성도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 돈을 가지고도 적자를 내고 망해왔다는 단순한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