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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 값의 상승 요인이 정말 종이값 때문일까?

by kaonic 2007. 9. 20.
늘상 있어온 이야기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얼마전부터 책값이 왜이리 비싼가로 시작해 책값의 상승요인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3월 경에는 22년 출판영업인 "도서할인 결국 독자 손해"라는 기사를 통해 과도한 마케팅과 함께 경쟁적으로 도서를 할인함으로써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 출간되는 책값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만원은 기본' 한국 책값, 왜 비쌀까?라는 기사를 통해 분책을 비판하기에 이르면서 내실보다 외형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조와 상업주의라는 매우 포괄적인 표현을 통해 출판계의 가격 상승에 한몫을 하니 겉만 보지 말라는 식으로 소비자를 살짝 비틀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전 기사에는 마치 출판협회에서 로비라도 한 듯 책값 비싼 이유는 '종이값'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 상승하는 종이값이 차지하는 원가비율이 무려 50%인데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책 값이 상승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공간을 낭비하는 편집으로 종이를 더 많이 낭비하도록 꾸미는 지금의 출판업계가 할 소리가 아니다. 시집에서의 여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상공간이 되어주는 반면, 일반 소설에서의 여백은 공허할 뿐이다.

또한가지 말도 안되는 소리는 고급 호화 양장본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과제가 남았단다. 참, 어이가 없어서 짜증이 솟는다. 누가 저급한 품질의 고급 호화 양장본에 익숙해질 수 있단 말인다. 무겁고, 두껍고, 딱딱하고, 잘 파손되는 책을 좋아할 사람이 어딧나? 말이 고급 호화 양장본이지 파손도 잘 되고, 허술하게 만들어 겉만 번지르르 한 최근에 출간되는 양장본들이 좋아 죽겠단 말은 한 번도 못 들어봤다. 대부분 가볍게 들 수 있는 튼튼한 책을 원하지 않을까?

종이값이 책값 상승의 요인이라는데 왜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페이지는 늘어나는 걸까? 기존에 출간되었던 책들의 재간이나 재편집판을 비교해보면 이런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경우 여러차례 재간되고 재편집이 이루어졌는데, 초기에는 단권으로 출간된 책이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페이지수가 늘어서 두권으로 나뉘고, 양장본이 등장하면서 편집은 더욱 허술해져 초기의 단권으로 출간된 책의 두께에 비해 무려 세배가 넘는 두께를 자랑한다. 기존의 책에 비해 글자의 크기가 미약하게 커져서 읽기 편하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직접 비교해서 읽어보면 별 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구판본이 페이지를 넘기는 횟수가 적어 읽기 편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또한 마찬가지다. 최초의 출간본은 3부로 구성된 내용에 맞춰 3권으로 나왔었지만, 최근에 팔리고 있는 것은 무려 5권으로 분책된 양장본이다. 편집은 마찬가지로 허술해지고, 페이지당 빈 공간은 너무나 많이 늘어났다. 두께는 3권짜리와 5권짜리를 비교해보면 무려 두배 가까이 두꺼워 졌다.

비교한 두 종류가 전부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것인지라 한 곳만 집중 공격하는 것 같지만, 위 두 경우가 제일 극명한 편집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인지도도 높기에 예를 들었을 뿐이다. 다른 유명한 책들에서도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위의 예를 든 책들 외에도 수 많은 종류의 재출간본들이 재편집되면서 빈공간이 늘어나 페이지가 늘었다. 최근에 출간되는 신간들은 처음부터 페이지가 늘어나도록 편집하고 있는 형편이다. 근래들어 일본의 비교적 가벼운 소설들이 붐을 이루면서 일본의 얇은 책들이 많이 번역출간되고 있다. 소설들이 많이 번역되는데 많은 경우 글의 분량이 적기에 국내에서 주로 사용하는 책의 사이즈로 출간하게 되면 책 두께가 얇아져 볼품없어보인다. 이런 이유로 얇으면 책값을 비싸게 받을 수 없으니, 더욱 공간을 비워 억지로 페이지를 늘리거나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얇으면 어떤가 내용만 좋으면 그만이지.

결과적으로 출판계는 스스로 사용하는 종이의 양을 늘려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원가비의 상승은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원해서 그렇게 변해왔다고 주장하지만, 스스로 책의 분량을 늘리고 호화 양장본이라는 이름하에 분책을 통해 책 값을 올리며 눈가리고 아웅하는 장사를 해왔던 것이다. 서구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나뉘어진 책을 양장본으로 합쳐서 단권으로 출간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꺼꾸로 단권 짜리를 양장본으로 나눠서 출간하고 있으니, 소장욕구도 별로 안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책들의 Mr. Know 세계문학 총서는 무척이나 환영할 일이다. 페이퍼백을 지향함에도 튼튼한 실제본방식을 도입해 쉽게 파손되지 않게 만들어서 좋다. (그러고보니 의도한 것과 다르게 열린책들을 주로 집어서 비교를 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 편집이 빽빽해지고 공간이 줄어들어 페이지가 줄었지만, 사용하는 종이가 두꺼워지면서 책의 두께가 매우 부담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 책값의 상승요인은 종이값이라기보다는 현재의 마케팅 방법과 출판사와 서점간의 마진율을 비롯한 유통망, 그리고 국내에서 잘 팔리는 해외 유명작가의 책에 대한 무모한 저작권료 퍼주기식 경쟁 때문이다. 소비자는 좋은 책을 합리적인 가격과 합리적인 편집디자인으로 만나길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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