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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커피라는 것, 제대로 맛보려 생각하면 매우 어렵다.

by kaonic 2008. 5. 23.
커피라는 음료를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떠올려보면, 아마도 19살 쯤으로 되돌아가야 할 듯 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커피라는 건 가끔 마셔봤지만, 가루커피, 설탕, 프림을 넣은 전형적인 올드 코리안 스타일이였으니 논외로 친다. (물론 이런 다방커피도 즐겨마시고 있으니 이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커피와는 조금 다른 의미) 영화에서나 보던 원두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뿐,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씁쓸한 맛이 나는 검고 뜨거운 음료에 크림과 설탕을 넣었더니 매우 알 수 없는 이상한 맛이 나는 굉장히 어른스러운 음료가 되버렸을 뿐이다. 혀에 익숙해지지 않는 맛은 무조건 어른의 맛이다. 지금도 원두커피에 크림이나 설탕을 넣은 것은 어른의 맛일 뿐이다. 그렇게 먹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를 시키면, 항상 설탕과 크림을 준다. 그러고보니 크림은 냉커피를 타 마실때 좋긴 하다. 냉커피는 역시 가루커피.
 
그러던 차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상태의 원두커피라는 걸 마시기 시작했다. 크림이나 설탕이 들어갔을 때와는 다른 순수한 씁쓸함과 가루커피에선 느껴지지 않던 향이 약간, 아주 약간 마음에 들었다. 이전의 다방은 점차 사라지거나 티켓 다방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새롭게 카페라는 이름의 원두커피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초로 정말 원두를 제대로 내린 원두 커피를 마셔본 것은 대학로에서 술집들이 점차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하고 카페들이 하나둘 자리잡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제대로 마셔보기.
 
원두커피의 붐이 일기 시작하자 백화점에서 원두커피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시기, 멋모르고 커피메이커를 하나 구입했다. 원두도 갈아서 구입했다. 원두에 따라 달라지는 맛이 조금 신기했었다. 그렇게 입맛이 서서히 변화하고, 지금의 여친과 사귀기 시작한 근 몇 년 동안엔 맛집기행 비슷한 것을 하는 바람에 더욱 입맛이 고급스러워졌다. 그렇다. 언젠가 와인의 맛을 알아버린 것 처럼. 이젠 커피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예전엔 음료수야 어쨌던 무슨 상관인가 싶던 행태가 이젠 커피집에서 커피가 맛 없으면 불평을 늘어놓는 단계까지 와버린 것이다.

얼마전 광화문 근방의 커피친구라는 곳엘 간 적이 있다. 이곳에서 정말 다양한 향 좋고 맛 좋은 커피들을 접하게 되면서 단숨에 업그레이드 되어버린 커피에 대한 취향 덕분에 그라인더를 구입하고, 핸드드립을 해먹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원두도 구입하고, 그라인더도 구입하고, 그녀에게선 드립셋트를 선물로 받아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바야흐로 커피의 시대. 이제 제대로된 주전자와 핫플레이트 한 개만 더 구입하면 커피 셋트 완성이다. 나중에는 원두를 직접 볶겠다고 설레발칠 것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녀가 말하듯 뭐든 빠지면 쭈욱 해버리는 오덕스런 남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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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매우 모던한 세라믹 그라인더(핸드밀)를 구입했다. 가격이 조금 쎘지만, 칼날이 세라믹이라는 거. 굵기 조절이 매우 쉽고 세밀하다는 점, 모양이 이쁘다는 점 등으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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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뚜껑을 열고, 원두를 집어 넣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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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닫고, 손잡이를 끼우고 마구 돌려주면 원두가 갈려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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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선물해준 핸드 드립 셋트. 이렇게 내 생애 최초의 핸드드립이 시작된 것이네.

어쨌든 일단은 핸드드립이 가능한 구성을 완료. 첫 시도는? 똑같은 원두임에도 전문가가 해주는 드립과는 다른 맛이 난다. 몇번 더 시도 해 보았지만, 역시나 어렵다. 초보자는 도구를 탓한다고 했나? 드립용 주전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보기로 했다. 언젠가 제대로 된 나만의 맛과 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쨌든 핸드드립을 한다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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