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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하는 일 없이 정신 없다는 것

by kaonic 2008. 10. 27.

좋게 말해 프리랜서 6개월 째,
 
그동안 맡은 일은 몇개 없고 줄창 노는 시간 만빵, 그 와중에도 뭔가 해보려고 시도 중에 있으나 두려움 앞에 벌벌 떨고 있다. 어쨌든 진행중. 과연 잘 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11월 안에는 결과가 나오겠지. 부탁 받은 일 몇 개는 아직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쓸데 없는 고뇌로 시간만 흘러간다. 그렇게 지나치는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광속을 느끼는 듯 하다. 나이를 먹으면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더니, 주체할 수 없던 시간이 어느새,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그러게 젊을 때 좀 해 두지 그랬어. 라곤 해도, 아직 젊은 나이. 그참, 애매하네. 허허헛.

시간이 많아질수록 기존에 일했던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나 둘 지나보니 과연 지금껏 내가 흘려보낸 시간과 소모된 피와 땀이 헛짓이었나 싶다.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허우적댄게 몇 년이던가. 한동안 글을 안 쓰고 살았더니, 할 말도 없어지는 지금, 뭐라도 끄적여 보고싶어 시작했지만, 역시 할 말이 별로 없다. 생각이라는 것이 치열함 속에 파묻히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고, 순간의 즐거움과 회피의 멍함 속으로 내던져진 것 같다. 그럼에도 스치는 단편들은 항상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외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요즘 유행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다. 요즘 내 인생이 이렇다. 우물쭈물하고 있다. 그치만, 버나드 쇼가 할 말이 아니잖아. 이 사람, 영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음악 평론가였으며, 평론, 희곡, 소설 등을 비롯해 수 많은 글을 썼으며, 노벨문학상도 받았고, <마이 페어 레이디>로 아카데미 각본상도 받았고, 무려 94세에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아닌가. 버나드 쇼가 어떤 사람인가를 모른다면, 그래 우물쭈물하지 말자. 라고 다짐해 보겠는데, 이건 아니잖아.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고 말하다니, 욕심 참 많다. 때문에 더욱 분발해야 하려나 싶기도 하고......

이야기가 옆으로 흘러흘러 점차 상관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금 EBS에서 하는 임권택 감독의 1964년작 "십년세도"를 곁눈질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홍국영이 주인공으로써, 최근 한참 주목 받다가 관심에서 조금씩 비켜가기 시작하는 정조 시대의 이야기다. 옛 궁궐의 여인네 복장에 쓰인 족두리가 참, 요즘의 사극에 비하면 촌스럽긴 하다. 하지만, 그런건 둘째치고, 화면의 구성이나 구도가 임권택 감독의 컬러 작품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고 멋스럽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내용의 각색도 옛 감성을 제한다 치면 꽤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편제> 이후로 인정하지 못했던 사람을 옛 작품으로 다시금 우러러보인다는 건 꽤 알딸딸한 기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홍국영의 여동생이 정조에게 시집가게 되어 원빈 홍씨가 되는 과정에서 양반과 상놈의 사랑관계가 가미되어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어쨋든 그녀의 애인은 홍국영에 의해 제주도로 귀양아닌 귀양을 가버린다. 그리고 원빈 홍씨는 시일이 흐른 후 제주도로 끌려간 님을 그리다가 결국 자살하게 된다. 으허허. 홍국영이 모함을 받게 되는 과정도 재밋는 것이 정세와도 관계가 있지만, 그의 수하가 벌이는 비리도 가미되어 있다는 점. 더더욱 재밋는 점은 정조와 홍국영의 대화. "주상께서는 정에 너무 끌리는 것 같습니다." 했더니, "허허 과인 경에게 끌리고 있지 않소."라니 깔깔깔. 동성애 성향도 있어보여. 쿄쿄쿄. 물론 농담이다. 큭큭.

암튼 원빈이 죽은 후 홍국영은 죽은 원빈 홍씨의 양자로 완풍군을 천거하여 완풍군(상계군)이 명목상 왕위 계승자가 되었으나 홍국영과 마음이 맞지 않았다. 홍국영이 1780년에 귀양가서 1781년에 먼저 죽어버린 이후 모반죄로 몰려 유폐당한 후 1786년 음독 자살하게 된다. 이것이 진실. 세도를 위해 움직인 홍국영의 모습들이 꽤 적나라하게 영화 속에 등장하고 있으니, 뭐랄까 홍국영의 모습이 최근 드라마 <이산>에서 보았던 모습과 많이 달라 조금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어쨌든 주인공은 홍국영이고, 홍국영은 왕을 위해 움직였다고 말한다는 것. 귀양가기 전에는 완풍군과는 상관없다 하며, 자신이 돌아올 길을 닦으려 노력한 모습도 보인다. 영화 상에선 홍국영을 귀양보낸 후 정조가 홍국영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동성애가 푸훗. 잘 보면, 홍국영은 참 사람복이 없구나 싶기도 하고, 자신의 수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 같기도하고...... 암튼 그렇게 십년의 세도가 끝나버린다는. 그리고 밝혀지는 충신 홍국영이 역모에 몰리게된 영화속의 사연. 정조는 홍국영을 생각하며 어찌 자신의 아비인 사도세자를 볼 것인가 하며 울부짖으니, 이것이야 말로 동성애 코드(나 꽤 집요한 듯) 으허헛. 결국 정조는 홍국영을 다시 불러들이려 하나 홍국영은 이를 거절하고 사랑하는 여인네와 떠난다. 영화적 거짓이 꽤 과감하다. 그래도 어쨌든 홍국영은 귀양살이하다 죽었다는 것이 진실. 이러다가 쓸데없이 <십년세도>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글을 끝낼 것 같으니 여기까지.

그러니까 말이지, 하는 일 없이 정신 없다는 것은 해야할 일은 없는데 왜이리 할 일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소리. 어영부영 밤 늦게까지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다음날 늦게 일어나 뭔가 조금 해볼까 하며 깔짝이다보면 어느새 밤이 늦어버리고, 드라마나 영화를 또 보게 된다. 매우 안 좋은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흑.

이제 정신 좀 차리자. 큰 일이 얼마 안 남았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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