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상자
배고픔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굶주림
by kaonic
2010. 12. 18.
해가 떠오를 때 정신줄을 놓쳤다. 진행하던 일이 걱정되었는지, 눈을 뜬 시간은 겨우 한 시간 쯤 지난 8시였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생각했지만, 몸이 정신줄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몸을 일으켰을 때는 9시였다. 약속시간에 늦었고, 밤새진행하던 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씻고, 이를 닦고, 옷을 꿰고, 간밤에 사다둔 감귤쥬스를 한 잔 마시고도 타는 목을 부여잡고 집을 나섰다. 내리치는 햇살이 안개속에서 산란되어 온통 눈을 부시게 한다. 저 앞, 걸음인지 달음박질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자세로 하이힐이 튀어가고 있었다. 불안한 그 모습에 오만 잡상이 떠오른다. 감각은 떨어져가고,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시간이 없다. 오래전부터 순차적으로 벌어지던 일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한꺼번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나쯤은 포기해야 할 것 같지만, 엮여버린 끈을 그리 쉽게 풀어내던지지 못하고 있다. 크게 숨을 쉬어봐도, 묘한 우울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날, 서울과 대전, 경기도 광주 등을 오가며, 감귤쥬스 한 잔, 물 한 잔, 오렌지 쥬스 한 잔, 작은 봉지에 들어있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과자 네 조각을 전부로 해가 떨어지고, 저 멀리 비행기 구름이 스쳐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굶주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배가 고프다는 것 만으로 굶주림을 표현할 수 없는 다르지만, 동질한. 그 무엇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