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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by kaonic 200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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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냇가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두리번 거렸으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몇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자 뒷목이 뻐근한 느낌에 목을 돌리다가 그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은 돌이였다.

특별한 모양을 가진것도 아닌 냇가라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있는 그런 것이였다. 그 돌이 자신을 던져달라는 듯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듯 그 돌을 집어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매끄러운 것이 아마도 냇가에서 물살에 휩쓸려가며 닳고 닳은 그런 평범한 타원형의 약간 일그러진 돌이였다. 물론 그 녀석이 어떤 종류이며 정확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던 녀석이란 건 정확히 모른다. 지리학자도 아니며 돌이란 녀석들에겐 별로 관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그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정오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냇가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돌은 매혹적인 몸짓으로 나를 유혹했다. "제발 나를 집어서 저 하늘을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몸짓에 더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움직여 돌을 든 손이 뒤로 꺽이고 말았다. 어디선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나의 온몸을 감싸며 간지럽히고,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날리다 가라앉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하늘을 향해, 태양을 향해 힘껏 팔을 휘둘렀다. 눈부시게 빛나는 정오의 햇살 속으로 잠시 돌이 사라지는 듯 하더니,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마지막 남은 노을의 잔상이 하늘 저편을 붉게 태우며 식어가고 있었고, 온몸은 지나가던 모기떼들의 습격과 햇살의 공격으로 여기저기 퉁퉁붓고 벌겋게 되어버렸다. 이마엔 커다란 혹이 하나 생겨있었다. 고개를 들자 머리가 온통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낮에 집어 던졌던 그녀석은 내 어께 부근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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