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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늘어지게 잔 낮잠과 함께

by kaonic 2007. 3. 30.
토요일. 늦잠자는 날. 평소보다 무척이나 이른 오전 9시 경에 잠에서 깨어났다. 사실 7시 30분 쯤에 깨어났지만, 토요일은 늦잠자는 날. 늦잠을 자야해. 라는 마음으로 자다 깨다 하며 뒹굴거리머 1시간 30분 가량을 소모했다.

크게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 진한 북어국을 스프처럼 홀짝이며 약간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밖은 추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옷을 챙겨입었다. 병원에 들러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들러 약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신발가게에 들러 운동화깔창을 하나 사들고 들어왔다. 잠시 뒹굴거리다가 문득, 전화기의 버그가 생각나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집을 나섰다.

버스를 잡아타고, 미아역에 위치한 서비스센타를 찾았다.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하였다. 전화기를 맡기고 무언가 할게 없을까?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것이 없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뒹굴거리며,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을 봤다. 중간 정도까지 보고, 다시 집을 나섰다. 서비스센타에 들러 나름대로 업그레이드 된 전화기를 받아들었을 때, 갑자기 버거왕의 갈릭스테이크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버거왕의 영지는 어디일까. 조금 생각해 보니, 덕성여대 근방에 하나가 있었고, 미아삼거리에 하나가 있었고, 대학로도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나. 남는 것은 시간, 어짜피 들어가는 교통비는 똑같기에 대학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거왕의 영지로 발을 집어넣는 순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조금 멍해졌으나 버거를 생각하니 금새 익숙해졌다. 갈릭스테이크버거를 받아들고, 2층의 구석자리로 갔다. 1층과 달리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책을 펼쳤다.

어슐러 K. 르 귄의 유배행성. 겨울은 깊어가고, 약탈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인간과 외인. 원주민과 인간이 함께 싸우기 시작했고, 감자튀김은 바닥을 드러냈다. 입맛을 다시며 책을 덮었다. 버거를 먹으며 책을 볼 수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인, 엄마와 아이들, 여고생들이 웅성웅성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었다.

버거의 포장지를 벗기자 갈릭스테이크 특유의 익은 마늘향이 퍼져올라왔다. 입맛을 다시고 한 입 베어물자 온 몸을 감싸는 맛에 현혹되어, 허겁지겁 버거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포장지만이 손위에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뱃속은 가득찬 느낌. 콜라로 입가심을 하며, 다시 책을 펼쳤다.

인간과 외인 사이의 엉뚱하고도 얼떨결한 로맨스. 그와 함께 깨어진 동맹. 그리고, 그들이 공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 챕터를 읽었을 즈음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기분에 정신이 조금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하늘은 흐려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고 있던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을 마져 보고 다시 책을 펼쳤다. 비참하기 그지없는 전투가 마무리 되고, 인간과 외인이 화합하는 듯 하며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 TV를 틀고, 방바닥에 엎드렸다. 화면이 흐릿해지며 낮잠에 빠져들었다. TV는 계속 혼자서 떠들고 움직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홍차를 한 잔 마시며, 콘칩을 주워먹으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DVD의 보너스 피쳐를 보았다. 끝나고, 다시 TV를 보았다. 결혼할까요? 라는 드라마가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멍하니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어느새 드라마가 끝나고, 뉴스가 나왔다. 귀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아나운서는 뻐끔거리고, 자막은 흐릿하다. 뉴스가 끝나고, 신돈이 시작했고, 끝이 났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200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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