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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북한산에 가다

by kaonic 2007.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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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랫만에 일찍 잠에서 깨어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산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산행에 대해 생각을 잠깐 하고 있는 동안 짧고 간단한 여행을 위한 짐을 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읽고 있던 책 두 권, 씨디 플레이어, 모자, 물통 등을 생각하는 동안 이미 가방에 싸버린 것이다. 크게 한숨 쉬고 물을 한잔 마시곤 그래 뭐 가까운데 가볼까?! 하며 옷을 챙겨입고,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가방을 집어들고 집을 나섰다.

마을 버스를 잡아타고, 4.19탑 입구에서 내려 북한산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를 향했다. 중간에 약수터에 들러 수통에 물을 채웠으며, 구멍가게에 들러 초코바를 두 개 샀다. 표를 구입하고 천천히 등산을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가보는 북한산은 언제나 여름에만 들렸기에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단지 중간중간 등산로가 조금씩 정비되어 조금 덜 위험해졌다고 할까. 그다지 위험한 산은 아니니까.

우선 목표는 대동문. 대동문으로 오르는 도중 계곡을 끼고 올라갔는데, 계곡에선 피서객들이 드문드문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구룡폭포를 지나 대동문에 도착. 주위를 둘러보려했으나 짙은 안개 덕분에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안개가 걷히며 시내가 보였다. 이렇게 짧은 여행만으로도 아득한 어딘가로 떠나온 느낌이 좋았다. 잠시 쉬며 성벽에 올라 앉아 해변의 카프카를 꺼내들었다. 다무라 카프카는 도서관에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었으며, 나쯔메 소세키를 읽었고, 체육관에서 규칙적이고 계획적인 운동을 했으며, 자위행위를 몇번 쯤 했다. 나는 뱃속이 출출해짐을 느껴 초코바를 한개 먹었으며, 물을 반병이나 먹어치웠다. 어느정도 쉬며 책을 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책을 덮고,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나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벽을 따라 잘 정비된 길을 얼마간 지났고, 곧이어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능선 오르막 중간 쯤에 암봉들이 바라보이는 부분에서 잠시 멈추어 안개가 훑고 지나가는 암봉을 잠시 바라보며 멍하니 서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OST를 들으며 물을 한두 모금 마셨다. 갈수록 험해지는 산세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나 오랫만의 산행인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계속 나아갔다. 갈수록 험해지지만 안전조치가 잘 되어 있어서 나름대로 손쉽게 오를 수 있었다. 지친데다가 물조차 떨어져 목이 탈 즈음 샘터가 나와 물을 실컷 마시고, 잠시 쉬며 세르브르크의 저주를 꺼내들었다. 다아시 경은 폴란드의 위장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치히로 오니즈카의 노래를 듣는 동안 다아시 경은 폴란드의 위장선을 완전히 점령했으며, 사건의 주요한 배후를 분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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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쉰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거북바위를 봤으며, 형제바위, 코끼리 바위, 용바위, 해골 바위 병풍바위 등을 봤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백운대(해발 836.5미터)에 올라섰다. 주변은 짙은 안개에 가리워져 마치 섬 위에 올라선 느낌이 들었다. 백운대에 앉아 하나 남은 초코바를 먹었으며, 샘터에서 떠온 물의 절반을 마셨다. 그동안 해변의 카프카의 미육군 보고서를 읽으며, 오쓰카 상을 생각하며, 요네쿠라 치히로의 노래를 들었다. 한시간쯤 시간을 보내니 안개는 더욱 심해져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내려갈 때가 된 듯 싶어 천천히 쉬지않고 산을 내려와. 처음 출발했던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를 지나 4.19탑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2003.08.10)
날도 따뜻해 지는데 슬슬 주말 산행을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