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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공중전화 박스와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

by kaonic 2007. 4. 8.

편의점과 한국관 나이트 사이에 존재하는 평범한 "공중전화 박스"는 전국민 휴대전화 사용자 시대의 잊혀지는 "공중전화 박스"와는 다르게 매우 분주하다. 간혹 토사물의 폭격을 받고 냄새에 쩔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때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끈임없이 사용되어지는 이른바 인기 있는 "공중전화 박스"인 것이다. 뭔가 즐거운 이야기가 오고가고, 눈물 섞인 이야기가 오고가고, 혼자만의 슬픔과 기쁨이 아닌 모두의 감정과 소식이 그렇게 녹아있는 공중전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요즘. 녀석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온갖 구질구질한 환경에 맞서듯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

출근길에 공중전화에 기대어 고개를 숙인 여자를 마주쳤다. 좋아 보이는 몸매에 청치마와 푸른 연두빛의 하늘거리는 상의를 입은 그녀의 고개는 푹 숙여 있었다. 어께가 살짝 들썩이며, 머릿채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려 했건만 쓸데없는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웃는 것일까. 우는 것일까. 걸음이 느려지고 자연스레 허리와 고개가 돌아가 그녀를 쳐다보게되었다. 아주 못생기지는 않은 정감있는 모습의 30대. 두 눈은 부어있고, 코끝은 마치 지금은 한 겨울이라 주장하듯 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기분에 흠칫 놀라 고개를 다시 돌리는 순간, 손에서 놓치면 다시는 잡지 못할 것 같이 꼭 잡아쥔 수화기를 타고, 버튼에 떨어지는 눈물이 반짝인 것 같다.

안절부절하며 전철역을 향하던 자신의 감정상태를 깨달은 것은 개찰구를 지나 플렛폼의 계단을 내려서기 시작할 때 였다. 어쨌든 아침부터 우는 여자를 본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감정적 사치에 지나지 않는 흘러가는 동정에 불과하다 해도, 남겨진 흔적은 어찌할 수 없다. 일생에 단 한 번의 감정,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감정, 모든 감정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자신을 구성하고 타인을 인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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