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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이름없는 아이

by kaonic 2007. 3. 27.
분홍 곰이 길을 가다 하얀 토끼를 만났습니다.
"앗. 토끼다. 안녕! 어디가니?"
분홍 곰은 한적한 가을 길을 혼자 걷자니 너무나 외로워져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팬더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팬더는 아니였지만 하얀 토끼가 너무너무 반가웠답니다.

하얀 토끼가 길을 가다 분홍 곰을 만났습니다. 순간 분홍 곰은 토끼를 잡아 먹는다는 까만 고양이의 말이 떠올라 무서움에 온몸이 굳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분홍 곰은 전혀 무서워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친절한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인사까지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하얀 토끼는 긴장이 조금 풀어져서 "안녕, 분홍 곰아. 겨울이라서 땔감을 찾고 있었어." 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외로운 데다가 따분하기 그지 없던 분홍 곰은 선뜻 땔감을 같이 찾아주기로 제안했습니다. 하얀 토끼는 까만 고양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지만, 분홍 곰의 행동을 보곤 전혀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지 않아서 그 제안에 승낙을 하고 같이 땔감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팬더는 대나무 숲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아.. 내 친구 분홍 곰이 보고 싶다." 라고 말하면서도 움직이기가 너무나 귀찮아 대나무 잎을 씹으며 그저 뒹굴거리고만 있었습니다. 문득 어디선가 날아온 낙엽을 보며, "가을이네? 곧 추워질텐데 겨울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곤 그냥 자빠져서 계속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팬더는 너무나도 게으른가 봅니다.

이름 없는 아이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연출 되고 있었습니다. 하얀 토끼가 분홍 곰의 등에 올라타고 사이좋게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름이 없는 아이는 깜짝 놀라 나무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분홍 곰과 하얀 토끼와의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이름이 없는 아이는 이 세상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외로웠답니다. 얼마전까지는 까만 고양이랑 친구였는데, 까만 고양이는 매일 거짓말만 하고, 자기를 놀리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름없는 아이의 곁에 언제나 있어주었기 때문에 이름없는 아이는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했답니다. 얼마전 까만 고양이가 "난 이제 더이상 이름없는 아이랑은 놀고 싶지 않아." 하며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이름없는 아이는 너무나 슬퍼 한참을 울었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겨울이 두려워 어딘가 몸을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던 참이였지요. 그때, 분홍 곰과 하얀 토끼를 보게 된 것이지요.

"이봐 분홍 곰아. 저기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
하얀 토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는 나무뒤에 숨어 빼꼼히 바라보는 이름없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분홍 곰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했습니다.
"어? 누구지?" 하얀 토끼를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고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지 이름 없는 아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이름 없는 아이는 갑자기 분홍 곰이 다가오자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답니다.
"안녕? 나는 분홍 곰이야. 저기 있는 애는 내 친구 하얀 토끼구. 너는 누구니?"
분홍 곰이 미소를 띄우며 이름 없는 아이에게 말을 했습니다.
"어... 아.. 아아... 안... 녕.. 나.. 나는 이름이 없어."
이름 없는 아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곤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다. 전에 까망 고양이가 말한게 떠올랐던 것입니다.

"분홍 곰은 배고프면 아무나 다 잡아먹는데!"
까망 고양이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이름 없는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저.. 정말?"
이름 없는 아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되물었습니다. 까망 고양이는 재밋다는 듯이 "그러엄! 너처럼 조그만 애들은 한입에 쏙~ 집어넣어버릴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이름 없는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다른 고양이와 놀러 가버렸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하얀 토끼가 분홍 곰과 이름 없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안녕!"
이름없는 아이는 하얀 토끼를 보곤 새삼 아까의 광경이 떠올라 더욱 놀랐습니다.

분명히 흉폭한 분홍 곰의 어께위에서 놀고 있던 것을 두 눈으로 확실히 봤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믿기지 않았습니다.
"얘. 너 혼자서 뭐하니?" 하얀 토끼가 말했습니다.
"그러게, 혼자 여기서 뭐해?" 분홍 곰이 호기심에 가득찬 표정을 말했습니다.
"저.. 저기... 나.... 그.. 그냥..."
이름 없는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너. 갈데가 없구나? 털두 지저분하잖아. 우리랑 같이 갈래? 우린 지금 땔감을 구하러 가고 있었어."
하얀 토끼가 말했습니다. 분홍 곰이 자기가 진작 그렇게 말할 걸 하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 그렇지만.. 분홍 곰은 아무나 잡아먹는다던데...."
이름 없는 아이는 와들 와들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분홍 곰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뭐라고?!"
"그.. 그치.. 만.. 까... 까만 고양이가 그랬단 말야."
분홍 곰과 하얀 토끼는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맞아. 나한테도, 그렇게 말했는데!"
하얀 토끼가 갑자기 생각난듯이 눈을 크게 뜨고 분홍 곰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뭐라구?"
분홍 곰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체 까만 고양이는 뭐하는 녀석이길래. 내가 아무나 잡아먹는다고 헛소문을 퍼트리는거야!"
분홍 곰은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이름 없는 아이를 보곤 곧 화를 누그러트렸습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괜찮아. 나는 아무도 잡아먹지 않아. 아무나 잡아먹는 건 저 깊은 숲속의 얼룩 호랑이랑. 살쾡이들 뿐이야. 그러니깐 겁먹지마."

팬더는 낙엽을 잔뜩 끌어모아 침대를 만들곤 그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참... 분홍 곰은 언제 오는 거야."
팬더는 너무나 게을러서 분홍 곰을 찾으러 갈 생각도 안하고, 그저 푹신한 낙옆 더미 위에서 굴러다니고만 있었습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다음 이야기는 언젠가.. 어느땐가.. 또다시... 시간이 남아돌 어느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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