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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에 올라간 내 이름

by kaonic 2007.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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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련 일을 하는 것이 희망이었던 시절. 사실 애니메이션의 제작에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이래저래 휩쓸리다 흐지부지 하는 둥 마는 둥 애매하게 흐트러져 버렸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지만 내가 컴퓨터 그래픽을 시작하던 시기는 한국 영화에서 CG가 사용되기 시작한 여명기에 가까운 상황인지라. 당시만 해도, CG가 쓰인 영화는 별로 없었다.

어쨌든, 시작하게 된 일. 내가 만든 영상이 부분이나마 극장화면에 상영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흐뭇함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그건 내 배를 채우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돈 한 푼 안 받고 한 일이였다.  거의 날품팔이 신세도 못 되는 신세. 내 돈으로 다니며, 내 돈으로 밥사먹으며, 월급은 커녕 용돈 조차 한 푼 받지 못하고 일했다. 그나마 좋았다고 기억하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이유와 함께 지금은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서 국제적인 배우가 된 전도연과 술 한 잔 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이겠지.

당시의 영화 제작과 관련된 스텝은 대부분 용돈이나 받아먹으면 다행인 거고, 한 푼도 안 받고 봉사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제작에 들어가서 한참 촬영 중에 영화가 엎어져서 한 푼도 못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나마 돈을 받는 건, 감독이라 칭해지는 사람과 촬영감독, 조명감독. 등등 역시 감독이라는 명칭이 붙은 사람들 뿐. 그리고 확실히 돈을 챙기는 건 A급 배우들. 그런 현실이 지금까지 쭈욱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지만, 시대가 변하는 지라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영화 판에 뛰어든다는 것은 돈 보다는 꿈. 꿈 보다는 이상이였다. 오로지 감독만이 살 길이며, 모두가 감독을 목표로 한다. 그래선지 박카스의 영화 스텝으로 일하는 애들이 자신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가는 걸 보고 감동먹는 CF는 알딸딸한 감상을 자아낸다.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날이 자료를 풍성하게 채워가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공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는 오래된 한국영화에 대한 자료들이 꽤 많이 있어서 가끔 찾아보고 즐기곤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찾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KMDb에 어떤 자료가 새로 올라왔을까?라는 포스팅이 눈에 띄어 들어가 봤다가 별 생각없이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올까?' 싶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제대로 한자까지 포함된 이름 석자가 뜨고, 생년월일까지 뜬다. 참여한 작품의 목록도 뜬다. 보는 순간 박카스가 생각나는 건 또 뭐냐고.


이제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다시 영화 판으로 돌아갈 마음도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 구석에서는 언젠가는 감독이 될테다. 하는 자그마한 희망이 남아있다. 가끔 이렇게 그 때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돌아오면, 조그만 희망이 어느새 팔딱 거리는 것이 느껴지곤 한다.

이리저리 치이고, 돈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보니 희망은 희망일 뿐이고, 현실을 헤쳐나가기 벅차다는 핑계로 그저 가슴 한 구석에 쌓아둔 꿈의 조각 중 하나가 영화에 대한 꿈이라 생각할 뿐. 그러고보면,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말빨이 어찌나 좋은지, 이빨을 까도 그것이 달콤한 꿈의 한 조각처럼 들리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그런 재능이 없는 나는 나이만 먹어가고, 삶에 찌들어가고 있으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조그마한 희망이나마 언젠가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다. 궁시렁궁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