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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세상도 어수선하고 나도 어수선하고...

by kaonic 2007. 7. 23.
며칠. 아니 몇달째. 멍한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기분이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나날 속에서 날은 점차 습기를 머금으며 더워지고, 끈적한 더위에 또 한 숨을 내쉰다. 어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노선은 무기력에 빠져버리고 나태함 속으로 한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제자리에 멈춰서 눈앞에 닥친 것들만 처리하는 나날이 계속 되니 수렁이 빠진 기분이다.

게으름은 뼛속 깊이 침잠하고, 정신은 한 없이 추락한다. 말끔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몸부림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계획은 모래무지처럼 감쪽같이 파묻혀 숨어버린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무뎌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표방하지만, 아무리 봐도 쓸데없는 자신의 비뚫어진 신념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기 위한, 스스로는 하나님의 품안에 모두를 끌어안고 싶어하는,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샘물교회의 선교단 23명이 납치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도 뒤늦게 알았을 정도로 변화를 놓치고 있다. 상황을 살펴보니 오묘하다. 그러고보니 참 많은 인원을 납치했다. 한꺼번에 23인의 음식과 물을 비롯한 기타등등의 관리를 하려면 난감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납치한 탈레반 세력도 참 대책이 없다 싶어, 피식 웃어버렸다.

납치된 사람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어찌할바를 모르는 건 나 뿐만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납치한 탈레반 사람들도, 아프간 정부도,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도, 얽혀있는 모든 인과관계들이 애매하고도 모호한지라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다. 1더하기 1은 2인 것 처럼 단순하게 풀릴 수 있는 사건만 일어나면 좋겠건만,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온갖 변수가 작용하는 혼돈 속에 빠져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갈 길을 정진해야 하지만, 모호함은 또다른 모호함을 낳고 그렇게 빠져들어 허우적대고 있으니 큰일이다.

가라앉은 만큼 마음만 급해져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니 더욱 깊이 파묻히는 기분이다. 하나하나 헤쳐나가며 조금씩이나마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주변에서 맴돌고 막상 실천은 못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여기서 재밋는 것은 이번 납치사건의 협상테이블(그런 것이 제대로 존재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지만)도 이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그들이 아무리 한국에 원해도 그들의 주적은 미국인지라 힘 없는 한국은 협상에서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으며, 그렇다고 미국 정부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리도 없다. 아프간 정부에서 조차 낙관은 커녕 협상의 파멸을 바라보는 정보가 나돈다. 얽히고 섥힌 실타래는 여전히 제멋대로 꼬여서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희망일 뿐. 아무렴 어떤가 세상이 그런걸. 내게 닥치지 않은 일은 그저 먼 산 불구경이 되는 것이 현실이고, 자조적인 감정은 멋대로 세상의 사건들을 해석하게 만든다. 그러니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어서 벗어나야지......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