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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애니메이션

사람이 되고픈 여우소녀의 모험 - 천년여우 여우비

by kaonic 2007.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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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강 감독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2년 프랑스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마리 이야기>로 대상을 수상한 다음부터다. 하지만, 그가 국내의 작품을 세계에 알린 것은 1999년 안시페스티벌에 초청된 <덤불 속의 재>부터라 할 수 있다.

그의 단편들은 80년대에 감독이 고민하고 혼란스럽게 보냈던 청년기의 심리상태를 반영해서 자의식 탐구, 내면의 성찰, 삶에 대한 고뇌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러던 중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자 <마리 이야기>를 만들었고, 이 작품을 통해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4년에는 제주도의 계절 근원 신화인 ‘원천강 본풀이’를 재구성한 <오늘이>를 통해 안시페스티벌에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보다 가벼운 이야기에 도전해 두 번째 극장용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만인 2007년 1월 극장에 공개된 여우비는 전국 4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이며 쏠쏠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엉성함과 함께 스타 마케팅을 위한 유명 배우들의 성우 기용은 뚜렷한 문제를 낳고 말았다. 전작 <마리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꽉 짜이지 못한 이야기 구조와 함께 목소리 연기를 한 스타들의 엉성한 연기가 지적을 많이 받은 것이다. 예전 <원더풀 데이즈>의 개봉 이후 재미없는 이야기와 스타들의 엉성한 목소리 연기로 인한 흥행실패와 함께 암흑기에 접어든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있어서, 다시 한 번 애니메이션계의 부활을 시도한 <여우비>의 이러한 반복적 경향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여우비>의 아름다운 영상은 맥 빠진 목소리에 한 대 얻어맞는다. 두서없는 이야기에 연타를 맞고, 양방언의 서정적인 음악으로 지지되어 겨우 다운되지 않은 느낌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영상과 음악이 눈과 귀를 간질거려도 재미없는 이야기는 쉽게 질려버리고 만다.

반대로 엉성한 화면과 조악한 소리일지라도 재미있는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이 관객들이 아닐까. 감독이 할머니의 두서없는 옛날이야기에 빗대며, 뜬금없이 삼천포로 빠지는 구성을 정당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지 알 수 없다. 두서없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재미라도 있지 않았는가? 기술과 함께 스타일의 발전으로 부족한 영상미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이제 이야기의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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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다섯 달린 여우소녀 여우비. 100년이 넘게 살았지만, 인간의 나이로 치면 아직 10살의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든 소녀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혼자였던 여우비 앞에 우주선이 불시착 한 것도 벌써 100년 전의 일이다.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나온 외계인 요요들과 어린 구미호는 100년째 서울 근교 야산에서 인간들의 눈을 피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춘기를 겪는 모두가 그렇듯 여우비 역시 뭐라 말할 수 없는 불만에 가득 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간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여우비는 아직 철부지 소녀일 뿐.

어느 날 산 속에서 또래의 인간 아이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여우비. 그는 ‘금’이라는 남자아이에게 마음이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인간과의 생활을 시작한 여우비 앞에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금이로 인해 비로소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여우비. 과연 인간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