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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by kaonic 2007.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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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며,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이 허무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푸른 하늘 속에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그렇게 바라보다 멍해져버렸다.

"이봐요."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들려오던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는 빠알간 토끼아가씨가 팔짱을 끼고 잔뜩 부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뭘 그리 생각해요?"

"아... 글쎄. 뭘 생각하고 있었지?"

"훗. 그걸 다시 되물으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모르겠군."

창을 등진 빠알간 토끼아가씨는 팔짱을 풀고, 턱을 괴며 웃음지었다. 창밖은 조금씩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녀는 그 빛을 받아서인지 더욱 빨간 실루엣을 그리며 빛나고 있었다.

"언제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군요?"

"아니... 특별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니였어."

"30분이나 아무말도 없었다구요."

그녀는 살짝 입을 내밀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가 나의 눈을 바라보면 수줍어진다. 마치 좋아하는 인형을 숨겨놓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수줍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랬나... 갈매기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언제나 바닷가에서 떠돌며, 육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갈매기를 생각했지."

"갈매기요? 와. 갈매기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산골에서만 살아서..."

"언젠가 한번 보러가자구, 가까운 바닷가라도 가면 되니까."

"갈매기는 새잖아요. 게다가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왜 육지를 못벗어나요? 언제나 하늘을 날고 있잖아요. 가끔 바다위에 떠다니기도 한다고,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잠깐 스치며 본 기억이 나요."

"갈매기는 말이지. 사랑을 나누려면 육지에서 나누어야해. 바다위에서 라든지 하늘위에선 사랑을 나눌 수 없거든. 게다가 새끼를 낳아서 기르려면, 육지가 필요하지. 즉, 갈매기에 있어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육지가 필요한거야. 그래서 육지를 벗어날 수가 없어. 그런 갈매기를 생각하고 있었어. 웬지 서글프잖아. 사랑이라는 것. 갈매기로서는 봄철의 번식기가 아니면 별 필요도 없는 것이거든. 그 잠깐의 사랑과 번식을 위해서 육지를 떠나 더 넓고, 깊은 바다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말야."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 그렇게 쓸모없는 것은 아니라구요."

"응. 그런가...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는걸."

그녀는 나의 성의 없는 대답에 질려버렸는지, 벌떡일어나서 에이프런을 벗어서 소파에 던져버린 후 입을 삐쭉 내밀고 주방으로 가버렸다. 뭔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와인 한병과 잔을 들고 소파로 다가와 털썩 앉아버렸다.

"이 병이나 좀 따봐요."

"술마시려고?"

"당신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웬지 답답해져서 술 생각이 나네요."

"미안."

"미안해 할 것 없어요. 내가 좋아서 당신 옆에서 말상대를 해주는 거니까. 하지만 너무 삐뚤어졌어요. 당신."

"그럴지도 모르지..."

"또 그런 성의 없는 대답."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