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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바나나와 시래기 장국. 그리고, 바나나.

by kaonic 2007. 3. 29.
이 이야기는 1979년 혹은 1980년, 무척이나 덥던 어느 여름날에 경찰서 유치장 옆 장판을 깔아 놓은 경관들의 쉼터에 앉아 허겁지겁 시래기 장국을 먹은 이야기인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강건하고, 활발하고, 모든 이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던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약간의 환상이 첨부되어 있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먹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오죽했으면, 아침에 눈을 떠 어머니를 보며 하는 소리는 언제나 "엄마 과자사먹게 10원만 주세요." 였을까.

친구들과 동네에서 뛰놀던 어느날, 누군가 바나나 라는 것을 먹는 것을 목격했다. 깨끗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녀석은 길가에 멍하게 서서 바나나를 먹고 있었다. 뛰놀던 무리들은 전부 그 앞에서 멈추어 버렸다. 과일가게에서나 테레비에서 혹은 글자를 익히기 위한 그림책에서만 보던 그 바나나를 실제로 먹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모두가 침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을 때 녀석은 남은 바나나를 덮썩 먹어버리곤 껍질을 길가의 쓰레기통(당시엔 집집마다 집 앞에 쓰레기통이 있었다. 쓰레기를 버려두면, 환경미화원-당시엔 청소부- 아저씨가 쓱쓱 퍼내간다.)에 던져버리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어느집 대문으로 쏙 하니 들어가 버렸다.

이 후로 바나나가 눈에 박혀버린 나는 그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조차 없을 지경이였다. 독특하고 괴이한 집착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니를 졸랐다. 그러나 없는 살림에 바나나라니. 가당찮은 이야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부아가 치밀대로 치밀어버린 나는 가출을 하기에 이른다. 그저 집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이였던 것 같다. 집을 나서 정처없이 길을 헤메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주위가 달라져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어느새 바나나는 잃어버리고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만 남아버렸다. 혼자남은 느낌에 나는 서럽게 울어버렸다. 한참을 울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 왜우니?

- 흑흑.

- 왜울어?

- 집잃었니? 집이 어디야?

- 엉엉.

- 이리와 아저씨랑 가자. 집전화번호 알아?

- 우리집 전화 없어요. 엉엉.

아저씨의 손을 잡고 간 곳은 경찰서였다. 이미 해는 기울어져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경찰서는 죄지은 사람만 간다고, 무서운 사람만 간다고 들어왔던 나는 경찰서 문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목을 놓아 울었던 것 같다. 어쨌든 들어갔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경찰아저씨들도 마침 배가 고파왔는지 무언가 먹을래? 라며 묻고 있었다. 낯설고 겁먹어 있었지만, 그래도 배는 고픈지라. 고개를 소심하게 살짝 끄덕였다. 잠시후 무언가가 배달되어 왔다. 시래기 장국이였다. 모두 같은 걸 시킨 모양이였다.

배가 무척이나 고파졌던 내가 장국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있을 때, 넋이 반쯤 나간 모습으로 어머니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는 지금까지의 서러움도, 낯설음의 두려움도 모두 잊고 어머니께 달려갔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손엔 바나나 한개가 쥐여져 있었다. 당시 가격 500원(이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그 바나나가 너무 아까워서 선뜻 껍질을 까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먹어보고 경찰서에서 얻어먹던 시래기 장국보다도, 쥐포보다도 맛이 없음에 엄청나게 실망했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가출이냐? 어린 내가 생각해도 한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