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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지하철의 다반사에 일격을......

by kaonic 2007. 4. 1.
지하철에서 피곤에 쩔어 휘청이고 있을 때, 노약자석이 비어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앉고 싶은 엄청난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섣불리 다가가 자리를 차지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선 때문도 양심적이여서도 아니다. 간혹 벌어지는 잔소리사건 때문이다. 잔소리라 함은 듣기 싫게 늘어놓는 잔말이나 꾸중으로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을 뜻하는데 - 무슨 국어선생은 아니지만 그냥 설명 - 자리가 텅텅 비어있음에도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보면 한 소리 안 하면 혓바닥에 가시가 돋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물론 그분들의 논지는 알겠지만, 다른 곳에는 빈 자리가 없고, 그렇다고 노약자석에 앉을 만한 노인도 안보이고, 서서가는 사람들도 드문 시점에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어떻단 말인가? 노약자가 등장하면 그 때 가서 자리를 비워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합리적이며 예의범절이 뛰어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잔소리를 하는 어르신도 어르신이지만, 그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잠에 빠져서 못듣는 척~ 하는 것도 자주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그나마 양심은 남아 있기에 잠자는 척을 하는 것일터인데 젊은 몸뚱아리 벌떡 일어서 준다고 어디 닳는 것 아니잖은가. 말 그대로 바른 행동으로써 잔소리를 회피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되면 분명 관절이 소모되고, 근력이 줄어들어 흔들리는 곳에서 가만히 몇 십 분을 서있는 것은 엄청난 고행이 될 것이 뻔하다. 나이들었을 때를 생각하며 행동하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어르신은 주변을 둘러보고, 젊은이가 자리에 앉아있을 만한 상황, 양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별다른 잔소리가 필요 없음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저 당장 편하고 좋은 것을 찾기에 급급할 따름이다. 또한, 어르신도 생각을 달리 해 보는 것이 어떨까? 무턱대고 잔소리를 하는 것 보다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한 연후에 잔소리를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예의를 이야기함으로써 상대방을 공감시키고 행동을 바꾸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들 바보, 멍텅구리, 안하무인 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목격한 안하무인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음은 참으로 가슴아프다. 게다가 그러한 에피소드는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으니 더욱 안타까울 따름.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쓸데없는 서두가 잔뜩 나온 것일지 모른다. 어쨌든. 지하철 퇴근길 피곤함에 추욱 쳐지며 손잡이에 체중을 싣고, 지루함을 면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었다. 늦은 퇴근인지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내 앞에서 자리는 나지 않고 있었다.

슬 슬 책에 빠져들고 있을 때, 노약자석 쪽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르신이 자리에 일어나며, 등을 돌리곤 반대편으로 다가가고 있었고,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덩치가 상당히 좋은 30대 초반의 아저씨(?)가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뻘개져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똑바로 얘기해. 꿍시렁 대지 말고!" 라며 어르신에게 반말로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은 당황했는지,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건너편 자리쪽의 동료들에게로 피신하고 있었다. 그 30대 초반은 계속 목청을 올리며, 어르신을 향해 "똑바로 얘기좀 해!" 라던가. "자리 전세 냈냐?", "이 전철이 당신꺼야?" 등등. 차마 어르신을 향해 말하기엔 민망한 말들을 계속 내뱉고 있었다. 어르신은 겁이 났는지 멀리 떨어지기 바빴으며, 그 녀석은 소리치기 바빴다. 사람들은 전부 그곳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두려움을 주는 커다란 덩치가 망설이게 만들었고, 동료까지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말로만 행패를 부리고 있었기에 겁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초리로 바라만 볼 뿐이였다. 그리고 수근거림.

나 는 무얼 했는가? 가만히 지켜 보고 있었을 뿐이다. 덩치도 힘도 기술도 없는 내가 상대하기엔 상당히 벅차보였으며, 나서 봤자 덩치크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이 이기게 마련이다. 게다가 나는 겁도 상당히 많고, 다른 사람의 일에 끼여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거기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생각해 버린다. 다행히 세 정거 쯤 지나서 녀석과 동료는 지하철에서 내려 버렸고, 소란은 진정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어르신 이제 목소리가 높아져가기 시작한다. 불만. 불만. 불만. 대부분 요새 젊은 것들로 시작하는 불만. 불만. 불만. 거기에 공감하는 어르신의 동료들 목소리도 따라서 커져만 간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공감의 비현실.

결 국 모두 자신 만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만히 멈춰서 주변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사실 그 안하무인 녀석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개똥녀처럼 만들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줄 정도로 싸가지가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 같았지만, 그런 녀석 만을 탓하기에 현실이 너무나도 복잡다단하다. 세상 살기 참 어렵다. 그와 동시에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알 수가 없게 되어가고 있다.

삶이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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