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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영화/드라마

브이 포 벤데타 - V For Vendetta

by kaonic 2007.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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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쇼스키 형제는 아나키스트일까? 그들의 영화는 언제나 - 라고 해봤자 매트릭스 시리즈와 함께 브이 포 벤데타 뿐. 각본에 손대거나 감독한 다른 작품들은 이런 경향이 없거나 약하긴 하다. 어쨌든 - 지배 집단을 전복 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모든 사회 변화는 자생적이고 직접적이며 대중적인 기반을 둔 것이라야 하며, 이와 반대되는 조직화된 운동은 권위의 조작에 의한 산물에 불과하다. 조직화된 혁명은 하나의 억압을 또 다른 하나의 억압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변화는 외부적인 통제가 없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대중의 자연적인 느낌의 표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브이는 이러한 아나키즘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절대 조직을 만들거나 이끌지 않으며 혼자 활동을 한다. 다만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직설적 의미를 내포한 수단을 통해 시민들을 깨우치려할 뿐이며, 이비를 집단이 아닌 동료로 만들고자 할 뿐이다.

인간이 기계에 의해 지배받으며 가상현실에서 살아가는 매트릭스의 세계나, 3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의 브이 포 벤데타의 세계처럼 지배 집단이 자유를 억압하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시민을 속이고, 억압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전복되고 나면, 어떤 세상이 오는 것 인가. 억압된 현실이 무너지고, 새로 찾아오는 자유, 그 다음은? 결국 워쇼스키 형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맴돈다. 매트릭스에서도 브이 포 벤테타 에서도. 새로운 자유를 찾지만, 자유로써 얻어지는 것은 무정부 상태다. - 생각해보니 매트릭스에서는 조직이 존재하고, 이끄는 자도 존재한다. 조직이 와해되어버렸다 해도 희망이라는 짐을 짊어진 그가 있잖은가 - 간혹 뉴스에서 들려오는 세계 여러 소국들의 무정부 상태에 대한 보도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새로운 권력을 얻기위한 이익집단이 여기저기 생겨나 서로 싸우고 힘없는 이들은 휩쓸려 죽어가거나 조직에 소속되어 서로 상처를 줄 뿐이다. 폭력과 압제에 맞서 싸우며 혁명을 계획하고, 실현시킨 것 까지가 전부 인 것이다. 이로써 억압에서 자유로 이행되는 카타르시스가 존재할 뿐, 그 다음은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인용한 감질나고 멋진 대사와 함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감정적으로 읊어대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영웅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말하지만, 정작 다가올 세계는 혼돈으로 이행될 뿐이다. 멋드러진 대사를 통해 철학으로 감싼 포장에 현혹되지 않고, 철저히 오락영화로써 감상한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재미있다. 심지어 충분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원한다면, 그건 커다란 오산이다. 깊은 생각만으로 브이 포 벤데타는 충분히 거부감이 드는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시민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는 브이의 철학적이고 멋드러진 대사와 함께 액션을 즐기고, 브이가 이비에게 행하는 현실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관객에게서 이끌어내기위해 던져주는 감정을 받아먹으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멋진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래 선의 능력을 가진 착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본래 생존 본능과 함께 학습능력, 그리고 사회적인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 선과 악은 상황이 만들어낼 뿐이며,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선이란 그저 집단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관습이다. 모두 아나키스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정부 사회의 이상은 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