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의 습작

차원위상이동에 관한 헛소리

by kaonic 2007. 4. 9.

"그러니까 차원을 이동할 수는 없는 일이야.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3차원 공간 자체도, 사실 4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 물체를 구성하여 하나의 사물로써 인지할 수 있는 3차원의 공간과 함께 지속해서 흐르는 시간 축이 조합되어 4차원을 이루는 셈이지. 허나 어찌된 일인지. 4차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한 상상만 하곤 해. 시간 축이 있어서 시공을 초월한다나. 그럴리가 없잖아. 사실 2차원이 겹쳐서 3차원을 이룬다는 단순한 사실을 살펴보면, 3차원이 겹쳐서 4차원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엔트로피의 부분적 해체로 볼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3차원이 바로 4차원인 것이지. 그 변화가 바로 시간 축인거야.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차원이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다시 3차원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시간인 것이고, 3차원은 붕괴를 향해 치닫고, 4번째의 축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겠지. 그렇게 우리는 물리적 3차원의 공간 속에서 4차원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거야. 따라서 물리적으로 다른 차원을 예측하거나 관찰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다른 차원으로 갈 수는 없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다른 차원의 존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 현재로써 4차원에서 차원의 이동이라고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시간축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 미래로 가는 정도가 아닐까. 이렇게 말해놓고 보면, 타임머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커다란 오해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만 알면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니까."

 T의 모습은 이미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 원래의 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세상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당황한 탓인지 아무렇게나 말을 쏟아내고 있는 듯 했다. 그건 R도 마찬가지여서, 두리뭉실 흘러내리는 듯 빨려올라가는 듯한 모습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있는 이곳은 뭐지? 눈이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으며, 감각기관이라고 칭해질 만한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잖아. 게다가 웬지 친근한 느낌의 이상한 물체들이 이리저리 다니고 있어. 또한, 물리법칙이란 것은 엿바꿔먹은 것인지 방향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으며, 어디론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인지 어딘가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우리가 올라서 있는 이 황당하게 생긴 바위는 바위인 줄 알았더니 꿈지럭 대질 않나. 우리가 호흡은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자네 모습을 좀 봐. 물론 자네에게 눈이란 것이 없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로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일 것이 뻔하지만 어쨌든 보이기는 할 것 아닌가. 자네나, 나나,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설명조차 하기 힘든걸."

 지평선이라고 부를 만한 곳 조차 보이지 않는 세계는 밤이 찾아오는지 점차 어두워져가고 있었으며, 그렇게 T와 R은 멍하게 논쟁같지도 않은 논쟁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떠오른 결론인데, 우리는 5차원을 구성하는 또다른 4차원의 병행세계로 빨려든 것 같아. 초끈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하는 중 입자가속기에서 입자들이 겹치면서 우리가 예상했던 입자보다 더 많은 입자들이 유입되어 충돌해 버렸을 때, 입자의 중복충돌에 의해 예측값에서 수천만 배를 넘어서는 엄청난 에너지 감소 반응이 일어난 거지. 이렇게 해서 생성된 에너지의 차원 이동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져서 근처에 있던 우리들도 이곳에 빨려들어버린 거야. 그리고 우리 몸의 입자는 이곳에서 환경에 맞게 재구성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겠군. 어떻게 생각해?"

 청소부 T의 이야기에 수리공 R은 고개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절레절레 흔들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의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마리 눈 먼 쥐 - 1  (1) 2007.06.08
눈을 가지기 위해서  (0) 2007.04.03
어색해  (0) 2007.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