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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들/애니메이션

스피드 그래퍼 - 소돔의 도시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by kaonic 2007.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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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세계의 경제를 파탄의 지경으로 몰아갔던 버블전쟁으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세계는 자본을 기준으로 한 세계표준화가 진행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급속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가진 자들이 막강한 권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욕망과 쾌락을 쫓아 타락의 도시로 변해가는 도쿄. 정재계는 극단적인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여권을 박탈당해 일본에 묶여있던 종군기자 사이가는 비밀 클럽에 대한 잠입 취재를 의뢰받는다. 이 클럽은 상류층 중에서도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만이 출입이 허가되며, 그 회비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아무나 회원이 될 수는 없지만, 회원이 된 자는 최고의 쾌락을 누릴 수 있다는 전설과도 같은 비밀 클럽. 저널리스트로서의 감각이 발동된 사이가는 이 의뢰를 수락하고, 결국 잠입에 성공한다.

그곳에서 사이가는 여신이라 불리는 소녀 카구라에 의해 행해지는 궁극의 쾌락을 위한 기묘한 의식을 접하게 된다. 그녀는 클럽에서 행해지는 의식의 중심으로써 클럽 지배인 스이텐구에게 조종당하는 처지였다.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도 자유를 갈망하던 그녀는 사이가에게 의식을 행하며 도움을 청한다. 사이가는 그녀와의 접촉(키스)을 통해 카메라로 촬영한 대상을 폭발시킬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생기게 된다. 생사의 기로에서 탈출한 사이가는 자신에게 생긴 힘의 정체를 알기 위해 텐노우즈 그룹 회장 신센의 딸 카구라를 찾게 되고, 그녀와 자신을 돕기 위해 탈출한다.

이제 카구라의 힘이 필요한 스이텐구가 그들을 쫓기 시작한다. 스이텐구가 보내는 특수한 능력자 -유포리아(쾌감, 만족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사이가는 어느새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게 되고, 마침내 스이텐구와 마주서게 된다. 욕망에 의해 발현되는 힘의 정체와 함께, 서서히 밝혀지는 비밀과 진실 속에서 선악의 경계가 붕괴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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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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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맥스에서 심야시간 대에 방영된 이 작품은 가벼운 이야기 풀이는 전부 뒷전으로 보내 버리고, 시종일관 진지한 무게로 다가온다. 연출을 맡은 스기시마 쿠니히사 감독의 말을 빌어보자면, “종래의 애니메이션 시청 대상인 10대·20대의 젊은이들을 아우르면서, 어린 시절의 생활 속에 애니메이션이 가까이 있었던 어른들, 또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볼 기회를 잃어 버렸지만, 계기가 있으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에 저항이 없는 30대·40대의 잠재적 애니메이션 시청자를 발굴하고 싶었습니다. 즉, 성인의 시청을 유도하는 작품의 창조를 본 작품의 목적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니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고상한 사상이나 철학을 소리 높여 내려는 것도 아닌,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작품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액션과 판타지와 휴먼 드라마,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비일상의 구석까지 그려내는 이야기. 그것들을 성인의 시청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차원에서 작품에 만들어 낼 것입니다. 즉,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창조입니다.” 이전에는 가벼운 이야기만을 연출해 왔던 감독의 새로운 포부가 느껴진다.

작품의 본 내용을 살펴보면, 스기시마 쿠니히사 감독의 “고상한 사상이나 철학을 소리 높여 내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코멘트와는 달리 시종일관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전반적인 사회 구조와 정치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언뜻 사회주의적 사상의 전환도 눈에 띈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상류층 인간의 부조리함을 욕망과 쾌락에 빗대어 자본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제기하며 신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텐노우즈 그룹을 등에 업고 비밀 클럽을 운영하는 스이텐구를 비롯한 지배계층에 올라선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현실의 부정과 부패, 사회적 부조리 등을 애니메이션 특유의 비유적 과장법으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극단적으로 비뚤어진 욕망과 함께 발현되는 유포리아의 특수 능력은 같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탐욕적이고 극단적인 추함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종군사진작가 사이가조차 사진에 대한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이 실현되어 나타난 유포리아의 능력이 그의 파괴본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욕망의 실현은 스이텐구가 이끄는 비밀 클럽의 모토인 최고의 쾌락과 직접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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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주요인물의 과거 회상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 또한, 소돔의 도시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어 어디에도 편한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사이가를 돕는 친구인 게이이자 마사지 가게를 운영하는 밥이나 그의 동생인 게이쇼걸과 동료 등 사회 소외층의 인간적이고 따스한 모습과 함께 그들 삶에 대한 시선을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또한, 아동 시청자를 배제한 성인 대상 서사 구조로써 TV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1화부터 강도 높은 선정적인 묘사가 과감하게 배치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나 일부 매니아들만 감상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일반 성인층을 대상으로 제작된 본격적인 하드보일드 액션 드라마가 어떤 반향을 낳을지 기대된다.


[스피드 그래퍼의 오프닝]


오프닝은 국내에서는 성인 애니메이션 <카이트>의 감독으로 유명한 우메즈 야스오미가 참여했다. 캐릭터 디자인을 비롯해 동화, 작화감독, 감독, 연출 등 못하는 부문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며, 특히 캐릭터의 디자인은 독특한 세계관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는 그림체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이야기되는 <기동전사 Z 건담> 오프닝과 엔딩 파트, <반딧불의 묘> 원화, <메가존 23 part2>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 원화, <스프리건> 원화 등 수 많은 애니메이션의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왔다. 그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로봇카니발>의 [프레젠스]일 것이다. <프레젠스>는 배경과 음악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혼자서 구성하고 감독한 작품이다. 비록 <스피드 그래퍼>의 오프닝 전부를 담당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동작과 모션에서 그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오프닝에 사용된 곡은 1980년 대에 전성기를 누린 영국그룹 듀란듀란(Duran Duran)이 1981년에 발표한 첫 앨범에 수록된 곡인 "Girls on Film"으로, 흘러간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피드 그래퍼>의 오프닝 영상과 잘 어울린다. 듀란듀란의 팬이라면 오프닝 만으로도 꽤 반가울 것이다.



[캐릭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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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타츠미

33세, A형, 프리랜서 카메라맨
카메라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에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사진기자가 낸 사진집을 보고 종군기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18세에 동서 통신사 사회부에 근무하던 토고시 세이지로를 찾아가 자비로 전쟁터로 가서 취재를 할 테니 사진을 사달라고 부탁한 후 외국의 분쟁 지역에 단신으로 뛰어든다. 이후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위험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다가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상처치료 과정에서 약물에 중독되어 남미의 슬럼가에서 폐인이 되어 지낸다. 이후 토고시의 노력으로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약물중독과 슬럼가의 사건에 말려든 죄로 여권을 박탈당한 이래 도쿄에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가 토고시의 비밀클럽 취재 의뢰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다. 클럽의 취재도중 위기에 빠지고 카구라와 엮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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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노우즈 카구라

15세, B형, 고등학교 1학년
일본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텐노우즈 그룹의 총수 텐노우즈 신센의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신센이 막강한 경제력을 손에 쥘 수 있던 발판이 되어주었던 구 아시카가 재벌의 아시카가 유이치로라는 소문이 있다. 부잣집의 외동딸로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을 듯 보이지만, 어머니 신센의 학대와 외면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악몽에 시달리는데, 실은 스이텐구에게 조종당해 비밀 클럽의 여신으로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날 비밀 클럽에서 의식이 한창중일 때 사이가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 사이가에게 의지하며 하나하나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에 갈대처럼 흔들린다. 세상으로부터 차단당해 가두어져 자란 탓에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이나 자유를 갈망하며, 억지로 배운 피아노 솜씨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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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이텐구 우쵸우지

28세, AB형, 텐노우즈 그룹 계열 록폰기 개발 흥업 사장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텐노우즈 신센의 신뢰를 얻어 급성장한 인물. 텐노우즈 그룹 입사전의 경력은 불분명하다. 텐노우즈 그룹이 기업을 확장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으며, 신센의 오른팔로써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더러운 일을 모두 처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무대에서 공개된 일이 거의 없다. 비밀 클럽을 이용해 정계, 재계, 관계의 주요인사를 포섭해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으로 친목을 다지며, 텐노우즈 그룹과 정,재계의 유착관계를 확고히 다진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고, 사실은 카구라를 이용해 비밀스런 의식을 진행, 유포리아들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냉혹하고 철저한 인물로 늘 같은 복장에 장갑을 벗지 않는다. 지폐로 만 담배를 피워대며, 오르골을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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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히바리

28세, O형, 특무과 경부
형사로써 운동신경과 두뇌가 모두 뛰어난 우수한 인재이다. 스스로 격투기를 연마했으며, 충기류 매니아이기도 하다. 유명 명문 대학에 재학 중 합법적으로 총을 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됐다. 자기중심적인 성격 탓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 사람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25세 때 사이가와의 만남을 통해 감정적 충격을 받은 이후 늘 사이가 주변을 맴돌고 있으며, 그에 대한 비뚤어진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툭하면 정당방위를 내세우며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댄다. 작품 속에서 조금 겉도는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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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노우즈 신센

38세, B형, 텐노우즈 그룹 총수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하던 중 일본 경제계의 거물로 불리는 아시카가 유이치로의 첩이 된다. 23세에 카구라를 낳았으며, 3년 후 아시카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재산의 일부를 상속받는다. 이를 발판으로 타고난 외모와 뛰어난 장사 수완으로 벤처사업을 벌였으며, 차례로 기업을 인수 합병 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발휘 수년 만에 일본 굴지의 텐노우즈 그룹 총수가 된다. 여기에 아시카가 그룹 자체를 흡수 합병해 총 자산이 국가 예산을 웃돌 정도라는 말이 있다. 기업의 상징물로 록폰기에 15층, 총 높이 700미터의 텐노우즈 빌딩을 건축해서, 옥상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했다. 자신감이 넘치며, 남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으며, 탁월한 경제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외동딸 카구라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학대하고 있다. 반대로 스이텐구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내며, 그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