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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

카네이션으로 부모의 가슴을 찔러라.

by kaonic 2007. 5. 8.
어버이날엔 세상에 빛을 보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혹은 선물을 드리거나, 돈 혹은 상품권을 드린다. 그리고 자신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효심이 지극한 사람이라며 어께에 힘을 준다. 혹은 자신도 남들만큼 부모를 생각한다며 마음을 놓는다. 세상 참 이상하다.

이건 마치 유행과도 같다. 평소에는 대체 왜 저렇게까지 부모에게 싸가지없게 굴까 싶은 사람 조차, 어버이날은 효도하는 시늉을 하는 날이다. 백화점에서는 어머니, 아버지께 생각 없이 드리기 쉬운 선물인 양산이나 양말, 손수건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아예 백화점은 어버이날을 대비해서 코너를 1층에 배치해 두고 있다. 길거리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부쩍 가격이 올라간 카네이션이 홍수를 이룬다. 어디를 바라봐도 카네이션 바구니가 보이고, 많은 이들이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이나 선물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고 자랑스럽게 거리를 거닌다.

그럼으로써 어께에 짊어진 일 년 간의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털어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날인 것이다. 그렇게 효도를 했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뿌듯하게 보내고, 그 다음날로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마치 어버이날 특집으로 독거노인들을 초청해 잔치 한 번 벌려주고 안방극장의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후 뿌듯해 하는 매스컴의 행태와 비슷하다.

어버이날 혹은 명절날에는 양로원 문턱이 닳아 없어질 듯 사람들이 오가고, 플래쉬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듯 번쩍인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자랑스럽게 사무실 한 컨을 장식하고, 매스컴에 훈훈한 일화로 소개되어 진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잔치 한 번 열어주고 늙으신 우리의 부모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다시 바쁜 일상 속을 헤쳐나가기 바쁜 것이다.

지난 장애인의 날에는 기념 행사를 한답시고, 장애인은 뒷전에 두고 행사에 참여한 고위층 인사들을 대접하고, 고위층 인사들은 자신은 착하게 살아왔노라 광고하기 위해 몇 장의 사진을 찍는 그런 행사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또, 어린이날에는 고아원 문턱이 닳아 없어질 듯 사람들이 오가지 않았던가. 그 날이 지나고 관심은 썰물이 빠지듯 싸악 빠져나가고 어버이날이라 들끓는 오늘을 생각해 보라.

이래선 어버이날이 마치 그동안 부모에게 잘 못 한 것을 반성하는 날, 혹은 하루를 통해 일 년을 마음 편하게 보내려고 정한 날 같지 아니한가. 일 년 내내 부모가슴에 못을 박고 어버이날을 맞아 효도 하는 척 하고, 일 년의 짐을 털어버리는 날이란 말인가.

이건 그대들을 위한 욕이 아니다. 나의 반성문이다. 지난 일 년 간 나는 얼마나 부모의 속을 썩혔으며, 얼마나 많은 수고를 어머니께 암묵적으로 강요하며 살아왔던가에 대한 반성문인 것이다.

우리에겐 매일매일이 어버이날이고, 어린이날이고, 장애인의 날이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