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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상자173

지하 사무실에 흐르는 실개천 철저하게 더럽혀진 개천에서 흐르던 물이 고여버린 너무나 깜깜해서 너무나 깊어보이는 시궁창 속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는 것 같다. 햇살은 커녕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공간 속의 음침한 인공조명 아래서 온 주변을 감싼 썩는 내음에 두통이 몰려오고 코가 마비되어갈 지경이다.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한 여름에 학교 앞 개천에서 코를 쥐어 막고 돌 다리를 건널 때 맡던 악취가 떠오른다. 머리가 핑핑 돌아버릴 정도의 강렬함이다. 건물이 오래된 지라 방수상태가 미흡하여, 방수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한 여름 폭우 속에서 물이 새는 건물의 지하공간에 궁여지책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물이 흘러서 하수 집수정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작은 물길로 언제부터인가 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 2007. 4. 9.
공중전화 박스와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 편의점과 한국관 나이트 사이에 존재하는 평범한 "공중전화 박스"는 전국민 휴대전화 사용자 시대의 잊혀지는 "공중전화 박스"와는 다르게 매우 분주하다. 간혹 토사물의 폭격을 받고 냄새에 쩔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때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끈임없이 사용되어지는 이른바 인기 있는 "공중전화 박스"인 것이다. 뭔가 즐거운 이야기가 오고가고, 눈물 섞인 이야기가 오고가고, 혼자만의 슬픔과 기쁨이 아닌 모두의 감정과 소식이 그렇게 녹아있는 공중전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요즘. 녀석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온갖 구질구질한 환경에 맞서듯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출근길에 공중전화에 기대어 고개를 숙인 여자를 마주쳤다. 좋아 보이는 몸매에 청치마와 푸른 연두빛의 하늘거리는 .. 2007. 4. 8.
오랜 기억 속의 친구로부터......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월은 바람처럼 제멋대로 굴곡을 그리며 흘러간다.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가만히 앉아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만히 앉아 다가오는 인연을 흘려보내고 후회한 적도, 가만히 앉아 다가오는 행운을 흘려보내고 후회한 적도 있다. 그럼으로써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은 아닐지라도 내게는 까마득한 기억저편의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나도 까마득했던지라 누구인지 떠오르지도 않아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는 내게 지나간 단편들을 하나하나 말하며, 기억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낮설게만 느껴지는 동창회.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2007. 4. 6.
마음의 주인이 되라 내 마음을, 내 행동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상처를 주는 것은 내 마음이고, 돌아오는 상처는 내 마음이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 어디 알고 있다고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오만에 찬 나는 내 스스로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간혹 엇갈리는 화살은 고스란히 무시하며, 그렇게 자아만족에 빠져 무심하게 살아온 탓이었다. 그리고 종종 후회할 실수를 하곤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과 다른 진심이 아닌 말들을 쏟아내는 것은 내 입인가, 내 머리인가 알 수 없지만, 화살을 내뱉으며 분명 생각하는 바와 다르다고 인식하면서도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제어하기 힘들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상처를 주고 만다. 그리고 후.. 2007.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