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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담벼락 밑에 버려진 여행가방 출근하는 길에 언제나 주유소 담벼락을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 버려진 여행가방을 본 것은 석달 쯤 전이였다. 갈색의 네모 반듯한 낡은 여행가방이였다. 여기저기 오래되어 바래진 항공사 스티커와 공항 스티커가 붙어있고, 떨어져 나간 자국이 남아 있어, 세월과 함께 여행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했다. 요즘의 흔한 바퀴조차 달려있지 않은 여행가방은 그대로 버려져 일주일 가량 방치되었던 듯 하다. 지나가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가. 여행이 떠나고 싶다던가. 저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라던가. 낡은 여행가방이 스쳐지나가듯 그렇게 사유가 스쳐지나갔다. 가방이 사라진 후 한달 쯤 지났을 때, 또다른 여행가방이 같은 자리에 버려져 있었다. 이번에도 낡은 여행가방이였다. 사실 여행가방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 크기였.. 2007. 4. 4.
서랍속에 그녀의 헤어밴드가 있었다 서랍이라는 녀석은 웬지 모르게 깊이 알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서랍을 열게 되면 습관적으로 반쯤만 열게 되어 깊이 쑤셔박혀 있는 것들은 보이지도 않게 된다. 물론 그건 나의 관심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인데다가 깊이 알고 싶지 않아서 였겠지만, 가끔 서랍을 전부 열때가 있다. 특별히 흥분하거나 깊이 들어가 있는 녀석을 찾기위해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서랍을 활짝 열어제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그녀가 남겨 놓은 빤짝이는 은실이 같이 짜여진 연푸른색의 헤어밴드가 눈에 띈다. 그럴 때면,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휩쓸려 10분이고 20분이고 멍하니 헤어밴드를 바라보게 된다. 헤어밴드가 나의 서랍속에 자리잡은지는 거의 2년가까이 지나가고 있는데, 언제고 돌려줘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2007. 4. 4.
불륜은 어디에나 있는 걸까 곤히 잘 자고 있던 새벽 2시. 밖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듣기 싫은 목소리톤의 어떤 중년 여성이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간간이 말리는 듯한 목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가보니 집 근처 "무지개 선녀"라는 점집 앞에서 소동이 벌어진 것이었다. 점을 잘못 봐줘서 저러나 싶은 생각에 한동안 구경을 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지고 드러난 원인은 불륜이였다. 뭐랄까. 간혹 동네길을 가다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 섞여있던 그 불륜, 드라마에서 단골소재로 쓰이는 그 불륜 때문이였던 것이다. 점집의 무당과 바람난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끝끝내 점집 안의 무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문의 유리가 전부 깨어져 있고,.. 2007. 4. 4.
내 일터. 내 자리. 내 책상. 내 강아지 인형. 가끔 고개를 들어 모니터 위에 엎어져 있는 강아지 인형을 서글프게 바로볼 때도 있으며, 한대씩 쳐줄 때도 있으며, 쓰다듬어 줄 때도 있으며, 머리 위에 올리고 있을 때도 있으며, 어께위에 올리고 있을 때도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 2007.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