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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그리고 험상 궂은 큰 바위 얼굴 하늘이 너무나 푸르던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밝아오는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 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던 자신을 돌아보니 한심했다. 문득, 산에 가볼까 싶은 마음에 주섬주섬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매미의 울음과 함께 맑은 물 흐르다 고이고, 다시 흐르는 계곡을 지날 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등산로는 사람의 손이 닿아 계단으로 변모한 곳이 많다. 깊은 숲 한 가운데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찬란하게 흔들린다. 숲을 빠져 나오니 어느새 저 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낮게 깔린 탁한 대기가 아쉽다. 어느새 정상이 다가오고, 파란 하늘 속에서 큰바위얼굴의 표정이 기분탓인지 오늘따라 험상궂게 보인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어디서 모인건지, 꽤 .. 2008. 9. 1.
세계 속의 나 그리고 상실 - 태엽 감는 새 "머리가 벗겨지는 것에 대한 대응책은 없어요. 벗겨질 사람은 벗겨지고 벗겨질 때는 벗겨지죠. 그런 건 막을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왜 곧잘 머리 손질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둥 하는 건 다 거짓말이에요. 그 예로 신주쿠 역 근처에 가서 그 주변에 누워 있는 부랑자들을 봐요. 벗겨진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매일 클리닉이니 사순이니 하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무슨무슨 로션을 쓱쓱 바를 것 같아요? 그런 건 화장품 회사가 적당하게 지어내서 머리 숱이 적은 사람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상술일 뿐이에요." "그렇군" 하고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넌 어떻게 머리가 벗겨진 것에 대해서 그렇게 상세하게 알지?" "요즘 가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거든요. 어차피.. 2008. 7. 25.
꽃다발 꽃다발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꽃 그 자체는 그저 간혹 마주치는 아름다움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 의미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2008. 7. 10.
슬픈 당나귀 그 옛날, 시리도록 슬퍼보이는 맑고 순한 눈망울로 주인을 바라보며 묵묵히 짐을 등에 지고 옮기던 당나귀, 그 후손들은 이제 이렇게 가두어져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좁은 우리 속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열정조차 없이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 멀리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거니는 말들을 보니 그 눈동자 속에 고인 체념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렇게 생이 지속되고 저물어 간다. 2008. 7. 2.